[사설]장관부인이 받은 뇌물

  • 입력 1996년 11월 13일 20시 43분


현직 장관의 부인이, 그것도 1억7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뇌물로 받았다니 할 말을 잊는다. 부인은 『남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 뇌물이 보건복지부장관인 남편 직무와 관련된 것이었고 서울중산층의 아파트 한채 값과 맞먹는 거액을 유관단체 대표로부터 받고도 남편은 무관(無關)하다고 주장, 치맛바람의 위력을 보는듯하다. 현정부 들어 장관이 뇌물사건과 관련해 경질된 것은 李炯九전노동부장관 李養鎬전국방부장관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앞으로 또 어느 장관이 뇌물사건으로 걸려들지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뇌물거래를 하는 고위공직자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게 됐다. 참으로 통탄할 일로 정부의 수치이자 나라망신이다. 고위공직에 오르기만 하면 명예는 뒷전이고 한몫만 잡으려는 풍조가 횡행한다면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는 뿌리뽑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李聖浩보건복지부장관의 경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안경사협회장으로부터 로비자금으로 뇌물을 받은 李전장관의 부인은 물론 李전장관도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 李전장관이 부인의 뇌물수수사실을 몰랐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설사 몰랐다 하더라도 부인의 몸가짐을 잘 챙기지 못한 도덕적 책임이 크다. 만약 李전장관이 그동안 안경사 관련 법률개정을 위해 힘쓴 적이 있다면 뇌물수수사실을 알았다고 일단 의심받을 만하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부인과 함께 뇌물수수죄의 공범으로 형사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부부를 함께 구속하지 않는 것이 수사의 관례이긴 하나 이번 사건의 경우 공범사실이 드러난다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도 관례를 깰 필요가 있다. 공직자 부부를 함께 뇌물죄로 처벌하는 것이 부인 등 가족도 공직자가 청렴한 자세로 공직을 깨끗이 수행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보다 근본적 관심은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구조적 비리를 뿌리뽑는데 있다. 현정권은 출범초기부터 부정부패추방을 소리 높이 외쳐왔지만 대통령임기만료 1년여를 앞둔 현재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는 더욱 음성적으로 자행돼 왔음을 李전국방부장관 뇌물사건과 이번 사건은 증명한다. 두 사건도 중개인이나 뇌물을 준 측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묻혀버렸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청렴성도 문제지만 그동안의 사정작업이 정치성향을 띠었거나 전시효과를 노려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사정태풍을 잠깐만 피하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뇌물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지 않는 한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공직기강을 지금 잡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사회적 충격과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각 분야의 구조적 비리를 철저히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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