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217)

  • 입력 1996년 11월 18일 20시 56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 〈24〉 종태는 이처럼 적당한 때에 등장하여 내가 복잡한 남자관계를 가진 여자임을 깨닫게 해주곤 한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다. 더구나 그 아내는 친구 후배로 나와도 그럭저럭 아는 사이다. 그런데도 나는 종태와 불륜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나다운 일인가. 내 마음은 비로소 좀 안정을 찾는다. 요즘 나는 약해졌었다. 지금도 내 정체를 깨닫게 해주는 종태가 아니었다면 세상에서 맡은 내 역할이 악역이란 것을 깜빡 잊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애리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현석과 결혼하고 싶어할 뻔했지 않은가. 한 사람에게 마음이 너무 많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는 의미에서, 종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애인은 아닐지언정 나한테 중요한 애인임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중요한 사람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종태가 다짜고짜 말한다. 『나와라, 여기 아파트 후문 쪽에 있는 포장마차야』 『글쎄』 『십분 지나도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몸을 일으키자 애리가 묻는다. 『나가려고?』 『응』 『이선생님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 『언니 얼굴을 보니 그렇게 반가워하진 않는 것 같아서』 『그만 관찰해라, 응?』 하는 내 말에 애리는 배시시 웃는다. 『아빠가 항상 그런 말 하셨어. 내가 맨날 남의 속마음 꿰뚫어보는 게 다 언니 닮은 거라고』 옷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던 나는 방문 앞에 잠깐 멈춰 선다. 뒤따라 들어오면서 기어코 할 말을 늘어놓는 애리를 가만히 쳐다본다. 「너 내 동생 맞니?」 라고 묻고 싶다. 그러나 다음 순간 스스로 대답을 한다. 이죽거리는 걸 보면 쟤는 정말 내 동생이야. 애리는 자기에 대해 솔직하고 나는 그렇지못한 것이 다른점이겠지. 똑같은 질료가 다른 운명을 만나 이렇게다르게 빚어진거야. 바바리코트의 소매를 꿰며 내가 삐딱하게 말한다.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애인이 많아서야. 그 아까운 걸 어떻게 버리겠어? 뭐 준법정신이 투철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국회에서 일부일처제를 없애기로 의결하기만 하면 그날로 당장 결혼할 거야』 애리는 먼지도 없는 어깨를 괜히 털어주며 지지 않고 대꾸한다. 『불행에 철저히 대비하는 성격이라서 남편도 하나로는 불안한 거야?』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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