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魯明씨가 외무장관에서 물러난 지 2주일이 됐다. 그럼에도 孔씨 퇴진의 진상은 아직도 확연하지 않다. 퇴임이유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선 정부의 설명이 오락가락했다. 尹汝雋청와대대변인은 「건강상의 이유」라고 발표, 孔씨의 인민군 경력에 대해서는 『이미 정리됐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李壽成국무총리는 건강상의 이유와 인민군 경력이 모두 작용했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그래도 李총리와 尹대변인의 설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孔씨가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이 의심받고 있다. 완전한 자의(自意)가 아니라 다른 사정에 의해 사퇴로 몰렸을 것이라는 시각이 건재하는 것이다.
한 주요국가의 서울주재 대사관은 孔씨가 「본인의사에 반(反)하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즉 「쫓겨났다」고 본국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 대사관은 孔씨가 「권력투쟁」에서 패배했다는 배경설명도 곁들였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청와대와 외무부, 또는 외무부 내부의 싸움에서 졌다는 분석이었다.
孔씨의 선배인 한 전직외무장관은 『장관, 특히 밖으로 자주 나도는 외무장관을 하려면 든든한 보호벽이 청와대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孔장관은 그것이 없었다』고 사석에서 말했다. 캐비닛(내각)보다 키친 캐비닛(대통령 보좌그룹)이 더욱 강해지곤 하는 대통령제 국가의 일반론이 아니다. 체험에서 터득한 현실론이다.
이런 시각은 몇가지의 정황을 근거로 한다. 하나는 인사(人事)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오래전부터 축적돼 왔다. 그런 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문제에 부닥쳤다.
孔씨는 외무장관으로서 파리에서 OECD가입협정에 서명하고 지난달 30일 귀국했다. 그는 외교관이 OECD대사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金泳三대통령은 지난 1일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오찬, 그리고 4일 기초자치단체장들과의 오찬에서 孔씨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거듭 밝혔다. 孔씨는 3일 사의를 표명, 4일 사표를 냈다.
둘째는 안기부의 역할 가능성이다. 예컨대 안기부가 孔씨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이에 대해 안기부의 한 고위인사는 이 보고서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으면서 『안기부가 사회 각 분야의 활동을 체크, 통치권자의 판단자료로 보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이는 안기부법의 허용범위를 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고위인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실무진이 만든다. 어떤 뒷받침 없이 실무진이 장관의 목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보고서에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실무진을 뛰어넘는 실력자의 몫일 것이다.
셋째로는 공교롭게도 외무부출신의 청와대 인사가 후임 외무장관에 발탁됐다. 이런 전후관계는 억측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요컨대 孔씨의 퇴진에는 권력과 관료의 마찰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권력, 특히 신생권력은 정통관료를 불신하고 경계한다. 全斗煥전대통령은 현역군인을 전역시켜 많은 대사와 외무부 기획관리실장에까지 임명했었다. 권력과 관료의 마찰에서는 대체로 권력이 이긴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권력의 방식은 너무 거칠었다. 예정된 개각에서 자연스레 물러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권력투쟁이나 공작의 냄새를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외무장관이 퇴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물러난 것은 대외적으로도 수치다. 외무장관의 진퇴에 권력투쟁이나 공작이 작용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OECD의 수준이 아니다.
이 락 연(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