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218)

  • 입력 1996년 11월 19일 20시 31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5〉 현관까지 따라나온 애리는 문을 잠그기 전에 내 등뒤에 대고 한마디 더 한다. 『언니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기 싫은가본데, 언니는 그냥 결혼에 한번 실패한 사람일 뿐이야. 일부일처제가 어떻다는 둥, 갑자기 세상 일에 초탈한 것처럼 구는거 보기 안 좋아. 솔직해 보이지 않는다구. 그런다고 외로운 이혼녀 티가 안 날줄 알아?』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웃고 있다. 애리가 점점 좋아진다. 바람이 꽤 부는 날씨다. 종태의 앞에 놓인 소주병은 벌써 반 넘어 비워져 있고 곰장어도 식어 있다. 『오랜만이다. 그 동안 사회부로 복귀해서 좀 바빴어』 『빨리 돌아가서 다행이네』 『그야 써먹을 만하니까. 이종태를 썩여두면 아쉬운 게 한두가지겠냐?』 그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하다. 대기발령을 받았을 때는 이제 허망한 야심을 다 버리고 사랑만이 진정한 가치임을 깨달은 사람처럼 눈물까지 흘리더니 다시 예전의 이종태로 돌아가 있다. 사람이 달라진다고 해야 일시적인 일이다. 코앞에 시련이 닥쳐 있을 때만 겸손해질 뿐이다. 『보고 싶었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종태는 자기 말의 진심을 증명하겠다는 듯이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것도 늘 하던 대로다. 안 만나는 동안 줄곧 나를 그리워했다는 듯이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나는 그런 말을 믿지도 않으며 또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래야만 여자가 좋아하리라고 생각하여 지어 보이는 일종의 성의인데 굳이 싫다할 것까지도 없다. 나는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다. 종태가 따라주는 대로 소주를 받아 마신다. 첫 모금에 목구멍이 찌릿하다. 종태는 다시 민완기자로 돌아간 이후 자신의 눈부신 활약상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시들하다. 술맛도 쓰기만 하다. 보도블록 위에 굴러다니는 나뭇잎을 쳐다보다가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쳐다보다가, 애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오늘 밤 현석을 만날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고… 말하자면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태가 내 잔에 자기의 잔을 부딪쳐왔으므로 나는 무심코 잔을 든다. 그때 종태가 말한다. 『요즘 말야. 집사람하고 사이가 안 좋아』 <글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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