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0)

  • 입력 1996년 11월 21일 20시 12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7〉 종태는 그 여자가 스쳐지나가는 여자일 뿐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아내 이외의 애인이란 존재는 이미 감정의 자유를 인정한 위에 성립된다. 정실에게는 질투가 허용되지만 나머지는 어차피 다 같은 처지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아내에게 하듯이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종태의 우려와 달리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은 최근의 여자가 아니라 그의 아내 쪽이었다. 경애에게 전해 들은 대로라면 그녀는, 종태의 마음은 나에게 있고 자신은 껍데기와만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사소한 물증 하나를 발견하자 평소의 의심이 엄청나게 불어나 병원까지 가야 할 만큼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 틀림없다. 그쯤되면 내가 남긴 흔적이 아니니 나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의 마음에 불안을 불붙인 대상은 나이고 실제로 그녀의 의심은 모두 다 사실이니까. 『미안하다.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집사람이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하길래 말이야』 『……』 『성격이 고지식해서 진짜 만나러 올지 모르는데, 진희 너, 괜찮겠냐?』 『벌벌 떠는 거 안 보여?』 내가 농담으로 받자 종태는 안심한 듯 껄껄 웃는다. 그런 다음 정색을 하고 나를 똑바로 보며 이렇게 덧붙인다. 『다시 말하는데, 그 여자랑은 아무것도 아니야. 일때문에 알게 됐는데 자꾸 전화를 하더라구. 이해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다 말하고 나니까 시원하다. 자, 한 잔 하자』 그러고도 우리는 아마 소주를 한 병쯤 더 마셨던 것 같다. 내 아파트로 같이 올라가자는 종태에게 애리가 왔다는 얘기를 해주자 그는 『그럼 택시 타고 나가서 아무데나 같이 들어가자』고 하더니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기어이 『너하고라면 지옥인들 못 가겠느냐』고 과장되게 덧붙인다. 내가 거절하자 제풀에 토라지는 체하며 『너, 내가 그 여자랑 깊은 관계라고 오해하는 거 아니지』하고는 이번에는 또 아무 소용없이 자기가 사랑하는 것은 나뿐이라고 순정을 맹세한다. 그러고는 나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열한시가 넘었고 취해 있었다. 마감뉴스를 보던 애리가 일어나더니 나를 흘끗 본다. 『전화 왔었어』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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