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칼국수로만 개혁 안된다

  • 입력 1996년 11월 22일 20시 17분


서울시청과 은행장 비리혐의가 또 불거져 나왔다. 자고 나면 부정부패 비리 소식에 사회가 곤두박질할 지경이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최근에도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비장한 각오로 부정부패 척결에 모든 힘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명예가 아니라 부(富)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고까지 경고했다. 이 강력한 경고는 역설적으로 취임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해 마지 않던 개혁과 사정이 사실은 실패했음을 자인한 셈이라는 것을 잇단 부정사건이 입증하고 있다. 왜 그런가. 대통령이 돈을 한푼도 안받겠다고 선언하고 칼국수만 먹는데도 개혁이 실패하고 부패가 뿌리뽑히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고위공직자의 부패관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 탁류가 대통령 주변 실세에까지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李養鎬(이양호)사건 李聖浩(이성호)사건이 산 증거다. 그 검은 물결을 대통령이 앞장서 차단하지 않는 한 개혁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열정만 있고 지혜 부족▼ 고위공직자의 부패는 정권의 신뢰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힌다. 그들을 뽑아 쓴 사람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열정만 있을뿐 그 열정을 국정에 구현할 인재를 가려 쓰는 지혜가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인재기용이 봉건적 충성심과 학연 지연 등 1차적 유대관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시중에 PK(부산 경남)와 함께 KK(경복고 고려대)라는 신조어(新造語)가 나도는 것도 대통령과 정권의 신뢰에 또다른 위기를 안길 수 있다.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돈 안드는 정치의 정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안경사협회 로비가 4.11총선에 집중된 것만 봐도 정치가 부패의 근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거기다 꺼졌는가 하면 다시 살아나는 대선자금 의혹이라는 불씨가 있다. 선거때만 되면 이돈저돈 가리지 않고 쓸어넣고 당선되면 이권을 나누고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돈놓고 돈먹는 식의 정치로는 부패를 근절할 수 없다. 내년에는 또 한차례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세번째 큰 이유가 사정의 정치성에 대한 의혹이다. 표적사정 시비에서부터 감옥에 가둔 비리공직자의 조기 석방, 검찰의 속 뻔한 불공정수사에 이르기까지 엄정 투명한 사정을 의심할만한 사례가 너무 많다. 이래가지고야 개혁과 사정이 「나는 바담풍 너는 바람풍」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 팽배한 냉소주의 속에서 중하위 공직사회의 청렴을 호소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수밖에 없다. ▼제도적 개혁 서둘러야▼ 이 정(政)관(官)경(經)유착의 「철의 삼각구조」를 허물지 않고는 체제적 부패를 근절할 수 없다. 구조적 수술 없이 의식개혁이라는 도덕론만으로는 안된다. 정부규제 철폐, 인사청문회 도입, 사정기관의 독립 등 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체계를 갖춰야 한다. 동시에 공직자윤리법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 돈세탁 방지, 비리조사처와 특별검사제 도입 등 최근시민단체가중심이돼 국회에 청원한 강력하고 포괄적인 부패방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부패와의 전쟁은 제도개혁이라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칼국수와 경고만으로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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