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반평생 외길 「거미박사」 남궁 준씨

  • 입력 1996년 11월 29일 21시 02분


「權基太기자」 관악유령거미, 와흘잔나비거미…. 반평생을 거미 연구에 바쳐온 거미연구가 남궁준씨(76)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발견, 이름을 붙여준 거미들이다. 린네 분류법에 따라 발견자 남궁씨의 성이 거미들의 학명 뒤에 붙은 것만도 15종이나 된다. 그의 집에는 3만여개의 알코올 표본병 속에 7만여 거미들이 담겨 있다. 이 표본숫자와 수준은 과히 세계 정상급. 대학원생들이 연구를 위해선 필히 찾는 곳이기도 하다. 중학에서 수학을 가르쳐온 그가 거미 연구로 내닫게 된 건 우연의 결과. 1958년 과학전람회를 열겠다는 교육부 계획이 발표되자 충북 무극중학교에 근무하던 그에게 출품작 준비가 떠맡겨진 것. 그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생물들을 찾아 보자』고 결심, 충북 일대의 산야를 뒤져 3백50여종의 거미를 모았다. 경북대 백갑룡교수를 찾아가 학명을 일일이 베껴 적었다. 이때부터 거미 연구는 「마음 속의 본업」이 됐다. 외출 때에는 반드시 빈 알코올 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휴일과 방학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포충망 분무기 흡충관을 챙겨 들고 심산유곡을 찾아다녔다. 『61년부터 동굴에 관심이 가더군요. 거기야말로 「세상의 빛을 못 본 생물」들이 우글대고 있는 보고(寶庫)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국에 산재한 3백여 동굴을 찾아다녔다. 동굴 낙석에 맞아 머리가 깨지고 지하 호수나 수직 동굴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이런 대가를 치른 덕에 수억년된 신종 거미를 발견했고 여분으로 동굴 생물 3만여 표본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우리 거미도감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촬영과 부분 정밀도를 그의 손으로 해내며 거미연구가 앞선 일본도감보다 더 잘 꾸밀 생각이다. 지난 19일 백갑룡교수마저 세상을 떠 이 일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거미는 추하다고들 하지요. 그러나 현미경으로 확대된 거미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미물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것, 이것이 제가 해온 자그마한 일의 보람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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