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법 개악 안된다

  • 입력 1996년 11월 30일 20시 14분


통합선거법의 선거사범 공소시효단축과 연좌제(緣坐制)폐지는 어느 경우,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엄청난 개악(改惡)이자 개혁의 후퇴이기 때문이다. 국회 제도개선특위에서 슬그머니 이 두 사안에 합의했던 여야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재검토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지만 도대체 정치권이 이런 발상(發想)을 하게 된 그 자체부터가 한심하다. 지난 94년3월 여야 만장일치로 통합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기념비적 쾌거라고 입을 모았다. 선거부정에 철퇴를 가하는 여러 장치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선거사범 공소시효연장과 더불어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또는 직계존비속과 배우자가 선거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후보자의 당선무효를 규정한 연좌제 도입이었다. 그런데 불과 2년반만에 현행 6개월인 공소시효를 4개월로 다시 단축하고 연좌제마저 폐지키로 합의했다니 말이 되는가. 여야 정치권은 선거풍토와 국민의식이 변하지 않은 현실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선거법은 이상론에 불과하다며 공소시효단축과 연좌제폐지는 개악이 아닌 현실화라는 논리를 폈다. 한마디로 속이 들여다보이는 군색한 핑계다. 검경중립화문제 등 나머지 제도개선작업에는 사사건건 당리당략을 내세워 평행선을 달리면서 유독 자신들의 기득권확보만 의기투합하는 것은 자기보신을 위한 야합(野合)이자 공명선거의지의 포기가 아닐 수 없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보았듯이 현행 공소시효 6개월은 선관위의 선거비용실사와 검찰의 효율적인 선거사범 수사를 위해서는 턱없이 짧다. 1년으로 연장하자는 시민단체의 입법청원까지 있는 마당에 오히려 4개월로 단축하자는 것은 멋대로 선거부정을 저지르고도 하루빨리 법망의 부담에서 벗어나자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당선 후 의원신분상의 불안정과 편파수사시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는 재정(裁定)신청제도를 제대로 기능토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쪽이 옳다. 특히 정치권은 연좌제의 경우 행위자처벌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국가의 법체계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진작부터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과 일본의 예로 보면 설득력이 없다. 선거부정은 후보자보다 오히려 선거운동원과 측근 가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상례다. 연좌제를 없앤다면 후보자가 막후에서 은밀히 지시하고도 선거부정에 따른 모든 책임을 사무장이나 가족들에게 미뤄버려도 문제될 게 없는 선거판이 되고 만다. 그럴 경우 타락 혼탁선거가 재연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무리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해도 국민대표들까지 이래서는 안된다. 여론에 밀려 일단 거둬들이는 모양이나 다음선거 때까지 또 언제 이런 발상이 되살아날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장래가 걸린 제도개선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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