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29)

  • 입력 1996년 11월 30일 20시 15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19〉 오른손이 없는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당신은 아마도 이해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내가 왜 그녀를 찾아갈 때마다 오십 디나르 씩의 금화를 싸들고 갔는가 하는 데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왜 나는 매일같이 갖가지 값비싼 물건들을 사서 그녀에게 보냈는가 하는 걸 말입니다. 글쎄요,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당시에 나로서는 내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에게 무엇인가 재물을 바치는 것은 그녀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갖지 않고 그냥 그녀를 찾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한가지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왜 내가 주는 오십 디나르의 돈을 뿌리치지 않고 매일같이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한 당신의 의문은 저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시면 풀릴 것입니다. 그녀를 찾아가는 나의 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나는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오, 이 무슨 악마의 농간인가?」 타국에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본 사람이라면 그 심정을 알겠지만 정말이지 난감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돈을 꾸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친지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난국을 타개할 돈이 달리 생길 일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앞뒤가 꽉 막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고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한푼 없는 알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괴로웠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이 카이로를 떠난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그 여자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돈 한푼 없이 그 여자를 찾아간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절망에 찬 나는 꼬박 일주일 동안을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여자 없이는, 그녀와의 그 감미로운 잠자리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끝내 숙소를 뛰쳐나왔습니다. 숙소에서 나온 나는 어디랄 것도 없이 마구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나의 발길은 우연히도 쓰와이라 개선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는지, 발들여놓을 틈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틈에 그 인파에 휩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인파에 휩쓸려 떼밀려가던 중 우연히 나는 기병 한 사람과 부딪쳤답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손은 그의 가슴께 호주머니에 닿아 있었는데, 그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묵직한 지갑이 느껴졌습니다. 지갑의 부피감이 느껴지자 그 무슨 악마의 농간이었던지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글:하 일 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