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0)

  • 입력 1996년 12월 1일 19시 56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4〉 애리가 뛰어가서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애리는 몸을 내 쪽으로 빙글 돌리더니 「지금 있냐구요?」라고 말하면서 힐끗 내 얼굴을 쳐다본다.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는 「되게 딱딱거리는 여자네?」라고 쫑알대는 애리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와 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수화기를 건네 받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네요』 어쩐지 명쾌하지 않아서 이기죽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퉁명스러운 목소리. 첫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상대가 누구라는 걸 알아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표정이 굳어진다. …강진희씨는 왜 이혼했어요? …글쎄요, 팔자가 센 거겠죠. …보기에도그렇게보여요.성격이까다로울것같아요. 그때 그렇게 말하던 종태 아내의 목소리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애써 담담하게 인사를 하는 게 고깝다는 듯이 그녀는 벌써부터 시비조로 나온다. 『누군지 알고나 하는 인사예요?』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죠? 내가 전화할 거라고 누가 말해주던가요?』 『…』 내 침묵에 대고 뺨을 갈기듯 그녀의 목청이 높아진다.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남의 남편하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그러고도 언제까지 그렇게 뻔뻔스럽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나 어디 한번 두고 보자구요』 『그럼…』 나는 하마터면 투서를 보낸 것이 당신이냐고 물어볼 뻔했다. 그러나 애리가 궁금한 표정으로 옆에 다가와서 앉았으므로 급히 입을 다문다. 종태 아내의 본론은 그때 부터 시작된다. 『내가 그동안 몰라서 가만 있었는 줄 알아요? 경애언니 얼굴을 봐서 참고 있었더니 이젠 집으로 전화까지 하고… 어젯밤에도 내가 받으니까 끊어버렸죠? 누구를 바보로 아나』 틀림없이 종태가 새 연애에 빠진 모양이다. 그러나 그 전화를 건 것이 내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주의하는 것만 가지고는 종태와 나의 관계가 보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내 다음에 오는 새 여자까지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선임인 나의 비밀까지 지켜지는 것이라니! 하긴 평생 지켜지는 비밀이란 게 얼마나 있겠는가. 어둠 속에서 일어난 일도 언젠가는 태양 아래에서 설명을 해야 하는 법이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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