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 〈5〉
종태 아내는 일방적으로 얘기를 쏟아 놓는다.
어젯밤 종태 부부가 심하게 다투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종태의 아내가 이혼을 들먹이며 아이는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자 종태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 그 이유가 문제였다. 종태가 아내 모르게 정관수술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수술한 지 일년이 다 되도록 자기한테는 감쪽같이 숨겼다고 종태의 아내는 흥분한다. 다 바람 피우자고 한 짓이잖아요. 우린 아들도 없는데 수술까지 시키고, 남의 가정을 이렇게 파괴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인다. 종태가 수술을 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다. 결혼한 지 육개월만에 아내만을 쏙 빼닮아 태어난 딸이 도무지 자기 자식같지 않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종태는 가부장제의 총아가 아니던가.
사람이란 아무리 급박한 순간에도 시간을 쪼개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가보다. 종태의 아내가 흥분하는 데에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지만 그런 한편 몇달 전 수술대 위에서 헤어졌던 내 아이가 종태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안도의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말은 반말투로 점점 과격해진다. 말을 늘어놓으면 놓을수록 참았던 화가 새록새록 도지고 스스로 제 목소리에 흥분이 고조되는 모양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수질 제대로 해먹나 어디 두고보자구!』
이 말을 끝으로 그녀의 전화는 콱, 쥐어박듯이 끊어진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속옷이 땀에 젖어 달라붙어 있음을 느낀다. 멍하니 앉아 있는 내게 애리가 물을 한잔 갖다준다.
『무슨 전환데 그렇게 쩔쩔매는 거야?』
『응. 애인 중에 유부남이 있는데 그 부인이야』
『뭐?』
애리가 갑자기 높은 소리로 깔깔댄다.
그녀는 내가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도 웃음을 그치지 않고 허리를 앞뒤로 꺾고 있다. 조롱하는 것은 아니다. 현석과의 관계에만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심리전의 하나다. 기분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내 얼굴은 찡그려진다. 투서 때문에 과민해진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나는 마치 전화 건 사람을 혼내주려고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수화기를 낚아채듯 들어올린다.
<글:은 희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