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처리가 법정시한(法定時限)인 12월2일을 끝내 지키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여야는 헌법에 명기된 예산안 처리시한이 「강제규정」이냐, 「훈시규정」이냐를 두고 마지막까지 설전을 벌이다 결국 이번엔 시한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과거처럼 격렬한 본회의장 몸싸움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어쨌든 헌법규정을 어긴 것은 사실이고 잘못된 일이다.
설령 훈시사항이라 해도 법을 만드는 국회로서는 법규정을 앞장 서 준수해야 옳다. 특히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서 의결토록 헌법에 명시한 것은 예산집행기관이 철저한 사전준비를 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인데도 국회가 이를 무시해 국민의 세금을 걷고 쓰는데 무신경함을 보여줬다. 국회는 지난 30년 동안 아홉차례나 예산안처리 법정시한을 어겼지만 새정치를 다짐하고 출범한 15대 첫 예산국회마저 다시 법을 어겨 국민의 실망이 크다.
이런 불상사는 제도개선 특위활동과 예산안이 연계됐기 때문이다. 제도개선안의 합의가 안되면서 예산안 또한 표류하게 됐다. 한마디로 여야는 국민에게 한 약속도 안지키고 법마저 무시하는 연속 실책을 저질렀다. 제도개선의 주요 쟁점들은 내년 대선(大選)을 겨냥한 각 당의 당략 때문에 타결되지 않고 있어 결국 철이른 대선싸움에 민생만 볼모로 잡힌 셈이다.
기왕에 법정시한을 못지켰다고 예산안처리가 마냥 지연되어서는 안된다. 예산안과 제도개선안이 연계 처리돼서도 곤란하다. 설령 나라살림과 민생, 당리당략까지 한 묶음으로 처리하려는 여야의 욕심이 맞아떨어진다 해도 그런 문제처리방식이 국민의 편에 선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여야는 당장 예결위와 제도개선특위 활동을 분리, 새해예산안을 빨리 처리하기 바란다. 특위현안은 일괄타결이 안되면 일단 합의사항만 법제화하고 나머지 쟁점은 본래의 활동시한인 내년 2월까지 처리해도 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고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