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2)

  • 입력 1996년 12월 3일 19시 59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6〉 『여보세요』 퉁명스러운 내 목소리와 달리 송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나야』 갑자기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내가 숨소리를 가다듬는 동안 현석은 다시 한번 말한다. 『나야.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별 일 아냐』 『안나올 거야? 내가 강남쪽으로 갈게』 한 시간 뒤 우리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났다. 『웬일이야? 이런 데서 만나자고 하고』 내가 자리에 앉으며 묻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현석이 싱긋 웃는다. 『오늘 청혼할 거거든』 『또?』 나는 가볍게 콧김을 내뿜으며 말 그대로 김을 빼준다. 현석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덧붙인다. 『방도 잡아놨어』 요즘 그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한다. 표정이 따뜻하고 예전과 달리 내가 던지는 독설에도 그다지 상처를 받지 않는다. 어쩌면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보기좋다. 언제까지나 그의 곁자리를 가지고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순간 순간 사로잡히곤 한다. 함께 걷다가 그가 팔을 내 어깨 위로 올리면 그대로 그의 품속으로 빨려들어가서 평생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차안에서 그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 나는 그 다정한 손길에 뺨을 댄 채로 살 수 있었으면 싶어진다. 또 그가 나를 안을 때. 그때마다 나는 사랑을 증명하는 데 이렇게 멋진 방법이 있음에 감동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은 단 둘이 있을 때에나 허락된다. 남의 눈으로 보면 호텔이나 여관방에 들어가는 남녀에게 아름다움이나 정당함은 있을 수 없다. 나를 겨냥한 투서에서 잘 표현했듯이 「문란한 사생활」일 뿐이다. 가장 냉정한 타인의 눈인 신문기사를 빌리자면 현석은 「함께 여관방을 전전하며 정을 통해온 정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전락돼 있는 것을 알면 현석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갑자기 쏟아지는 밝은 빛 아래에 우리 둘의 엉겨붙은 벗은 몸이 드러났을 때, 어쩌면 그는 객관적이 되어 우리 관계의 실체가 추악한 치정임을 깨닫고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 문란한 여자를 만난 탓에 추문에 휩싸였다는 자책. 솔직히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글: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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