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3)

  • 입력 1996년 12월 4일 20시 10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7〉 방을 잡았다는 현석을 향한 내 말은 시니컬하게 던져진다. 『우리가 호텔방 들어가는 거, 뒤에서 다 촬영하는 사람 있다는 거 알아?』 『무슨 소리야?』 『학교로 투서가 들어왔어. 사생활이 난잡한 여교수 좀 쫓아내라고』 앞뒤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현석은 담뱃갑으로 손을 뻗는다. 나도 담배를 피워 문다. 현석이 내 담배에 먼저 불을 붙여준다. 그러고는 연기를 한번 길게 뱉은 다음 연기를 피해 눈을 찡그린 채 입을 연다. 뜻밖에도 목소리에 여유가 있다. 『차라리 잘 됐어』 『뭐가?』 『빨리 결혼하면 돼. 남녀관계란 결혼하면 다 면죄부를 얻으니까. 우리가 지금 호텔에 들어가는 것이 남들 눈에 패륜으로 보이겠지만 결혼할 사이라면 할말 없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올해 넘기지 말자』 『당신만 문제된 게 아니라니까. 나는 저 천인공노할 동성애에 대한 맹렬한 지지론자에다가 인면수심의 윤락 찬성론자고, 게다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당했대. 유부남하고도 놀아나고…』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과장인지 나도 웬만큼은 알아. 문제될 것 없어』 『이제 얼마 안 가 투서 이야기가 교수사회에 쫙 퍼질 텐데, 그리고 어쩌면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고. 근데 그런 추문의 주인공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야? 당신 그런 손가락질이나 뒷공론을 견딜 수 있어?』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당신하고 바꿀 만큼 큰 문제는 아니야』 현석은 담배를 끄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독일에 유학가 있을 때 말야. 아이를 몇 명씩 낳고도 결혼하지 않거나 평생을 그냥 동거관계로 지내는 커플들을 많이 봤어. 인간의 감정을 제도로 억압하지 않으려는 거지. 하지만 이 나라는 그게 아니잖아』 현석의 눈이 내 눈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우리가 사랑을 인정받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어』 『……』 『좀 안 좋은 일이 터지긴 했지만, 뭐 전화위복이라고 이 기회에 빨리 결혼하게 되면 오히려 잘 된 거지』 현석은 탁자 위에 있던 내 손을 끌어다 잡는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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