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鄭東祐특파원】북한 주민 일가족 17명이 홍콩으로 집단 탈출한 사건은 막연하게 추측되던 북한주민들의 대규모 탈출사태가 현실로 닥쳐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 탈출은 이제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사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의 대열에 나서는 것은 북한의 식량난과 생활여건이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질 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남아 있어도 어차피 굶어 죽을 상황이기 때문에 탈출하다 붙잡혀 죽으나 앉아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박한 심정이 북한주민들 사이에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일가족을 대표해 홍콩 당국에 대한 진술을 도맡은 김경호씨(68)의 차남 금철씨(36)는 북한주민들의 이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제 북한당국의 주민에 대한 통제력도 상당히 약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주민의 의식주를 국가가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의식주 중 가장 기본적인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주민에 대한 치밀한 통제가 어렵다는 것.
인민군 분대장 출신인 김씨는 군인들 역시 식량이 없어 죽으로 급식을 하고 있어 사기가 형편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경호씨는 진술을 통해 자신은 남한 출신이며 한국전 당시 인민군에 강제징집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형 두명과 여동생은 현재 서울 이태원동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이 끝난 후 현재의 부인과 결혼해 처음에는 평양에서 살았으나 지난 57년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함북 회령시 산촌 농업지구로 추방돼 최근까지 일가족이 모두 농업에 종사했다는 것. 그러나 최근 중풍이 들어 노동력을 상실하자 일가족 모두가 회령시 공업지구 공장노동자로 소속이 변경돼 탈출전까지 일해 왔다.
김경호씨의 부인 최영실씨(58)는 진술을 통해 지난 94년 7월 金日成(김일성)이 사망해 전 인민이 애도를 강요당하고 있었을 때 마침 자신이 아파 문병온 이웃사람 앞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가 「어버이 수령의 상중에 미소를 지었다」는 이유로 신고당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결국 1백근짜리 돼지 한마리를 뇌물로 바치고 무마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 일가족중 둘째딸은 현재 임신 6,7개월 상태로 태아까지 감안하면 이번에 탈출한 가족은 모두 18명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