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인 48년7월 제정된 이후 지난 87년10월까지 모두 9차례 개정돼 오늘에 이르렀다. 한 헌법당 평균 수명이 4년4개월 남짓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이런 계산법에 따르면 탄생한지 9년1개월이 넘는 현행 헌법은 과거 어느 헌법보다 장수(長壽)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9차개헌 때까지 최장수 헌법은 7년10개월여의 수명을 누린 「유신헌법」이었다.
▼ 개헌론과 「권력분점」 징후 ▼
이처럼 장수한 탓일까. 근래들어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곳곳에서 개헌론이 불거지고 있다. 물론 최근 개헌론의 진앙(震央)은 야권이지만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개헌불가」 입장을 누차 천명하기까지 여권의 고위인사들이 대통령중임제 등 개헌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제기한 것도 아직 기억에 생생한 얼마전의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여기저기서 개헌론이 대두되는 자체가 그만큼 우리 정치권이 유동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이 바람직스럽든 그렇지 않든 군사정변, 독재와 반독재투쟁, 정략적 개헌논의, 지역할거식 투표행태의 심화, 집권세력의 취약한 정치역량 등 갖가지 질곡(桎梏)의 정치사회사속에 생성된 「현실적 산물」이라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든 차기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대권게임」의 뒤안에서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자리잡아가는 한가지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성급한 예단인지는 모르나 지난 30여년간 지속됐던 우리 정치의 권력독점구조, 즉 1인 지배체제가 끝나고 권력분점의 시대가 개막될 징후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점이다. 다시말해 차기 대선은 단식(單式)이 아니라 사실상 복식(複式)이나 단체전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야권의 DJ와 JP는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이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시작한지 오래다. 물론 여권에서는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현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른바 대선주자들로 부상되는 인물들의 면면이나 당내 역학구조상 「1인 독식체제」를 전제로 대선을 치르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권력장악력이 남달리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난 김대통령도 지난 92년 대선국면에서 타계파, 또는 타지역 세력에 「분점」까지는 아니라해도 「분배」 약속을 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진다.
이는 개헌론과는 또다른 문제다. 벌써부터 여권내에서 불거지는 대선주자들끼리의 합종연횡론(合縱連衡論)은 바로 현행 헌법체제내에서의 권력분점론에 다름아니다. 아무튼 어느 쪽을 「절대선(絶對善)」이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권력체제변동의 당 부당을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논해봐야 오로지 승리를 위해 명운을 건 대선주자들의 귀에 들릴리도 만무다.
▼ 公論化통해 비전 제시를 ▼
다만 지난 90년 3당합당 이후 92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면처럼 밀실담합 약속파기 배신 변절 등으로 얼룩지는 「야바위판」이 되풀이되어서는 정치권의 내일과 나라의 앞날이 암담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기왕에 권력분점체제가 불가피하다면 개개인의 몫 챙기기를 위한 「밀실담합」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한 국정운영의 비전 제시가 대선주자들이 외면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멀지않아 본격화될 대권게임의 관찰자 심판자, 즉 국민들이 어느 무엇보다 주의깊게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李 度 晟 <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