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30경비단과 경복궁

  • 입력 1996년 12월 16일 19시 56분


▼경복궁안에 자리잡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예하 30경비단의 본부가 지난 79년 12.12 군사반란의 모의와 지휘 현장임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全斗煥(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내린 암호명 「생일집 잔치」에 따라 하나회원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실력자들이 張世東(장세동) 단장실에 모여 비밀회의를 갖고 鄭昇和(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체포 및 병력출동을 결행했었다 ▼30경비단 주둔지는 경복궁 북단의 약 1만3천평으로 일제(日帝)때도 군을 주둔시켰던 곳. 61년 5.16 쿠데타때 혁명군으로 동원된 육군 30사단의 1개 대대를 청와대경비를 위해 그 자리에 주둔시키고 그해 6월1일 수도경비사령부예하 30대대로 정식 발족시킨 것이 30경비단의 모체였다. 고려의 무신(武臣)집권때 집권자들이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설치한 사병(私兵)집단인 도방(都房)을 연상케 했다 ▼이 부대는 68년 1.21사태때 金新朝(김신조) 등 무장간첩의 청와대부근 침투를 막지 못해 된서리를 맞기도 했으나 70년대 들어 부대 규모가 연대급으로 커지면서 경비단으로 재편됐다. 부대장의 계급도 소령에서 중령으로 올랐고 병력 및 화력이 증강되면서 다시 대령으로 바뀌었다. 청와대경호실 직속으로 보안사령부의 부대점검도 받지 않았으며 경비단장 자리는 하나회원들이 대물림하는 군부의 가장 확실한 출세코스가 돼왔다 ▼30경비단의 외곽이전은 93년2월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 후 경복궁 복원계획이 본격화하면서 확정됐다. 지난달에 시작된 부대이전은 17일새벽 전차와 장갑차들이 경복궁을 떠나 경기도지역으로 옮겨감으로써 끝났다. 또 30경비단은 33경비단과 통폐합, 제1경비단으로 새로 태어난다. 옛 조선총독부건물이 철거된데 이어 30경비단도 떠나 이제 경복궁은 외관상으로는 옛 모습을 대부분 되찾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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