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및 5.18사건 항소심재판부는 1심과 같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주동자인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씨를 비롯한 피고인 대부분의 형량을 크게 낮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군사반란 및 내란의 수괴,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씨의 경우 법정형(法定刑)이 반란은 사형뿐이고 내란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임을 고려할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재판부가 전씨의 감형이유로 6.29선언의 수용을 내세운 것은 잘못이다. 전씨가 대통령 재임중 6.29선언을 수용, 민주회복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공(功)이 있다고 했으나 우리가 보기에 6.29는 국민이 희생을 무릅쓰고 항쟁한 끝에 전(全)정권으로부터 쟁취한 것이다. 재판부의 역사인식은 국민 다수의 역사인식과 거리가 멀며 법감정과도 맞지 않다. 또 「권력의 상실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를 탈피…」 「자고로 항장(降將)은 불살(不殺)이라 했으니…」 운운한 재판부의 양형론(量刑論)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정의의 실현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재판은 민주화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전, 노씨 등 신군부의 쿠데타와 내란행위를 엄격히 단죄,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게 하자는 역사적 심판이다. 반란 및 내란 수괴인 전씨에게 사형을 내린 1심판결은 얼룩진 과거를 청산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으나 2심 판결로 그 뜻이 퇴색하고 말았다. 다른 피고인들의 양형이유에도 감상적으로 판단한 곳이 많아 재판부가 과연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2심재판부의 판결내용중 평가할만한 대목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국민의 저항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점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집단을 이뤄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할 때는 헌법기관에 준(準)한다고 전제,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압적으로 진압한 것은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崔圭夏(최규하)전대통령의 법정증인소환과 광주피해자의 법정증언 등에도 불구하고 광주유혈사태의 진상이 1심수준에 그대로 머물고 오히려 내란목적살인의 책임범위가 광주재진입작전 만으로 축소된 것은 유감이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대기업 총수들에 대해 집행유예나 무죄를 선고한 것은 뇌물공여의 1차적 책임이 당시의 비정상적 권력에 있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인들은 건전한 기업윤리 확립에 보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항소심판결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사실심은 모두 끝나고 법률적 쟁점만을 서면으로 다루는 대법원의 재판이 남게 되었다. 12.12, 5.18의 남은 진상을 캐는 일은 이제 역사의 몫이 됐으나 대법원도 사법사(司法史)에 길이 남는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