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파행으로 막내린 정기국회

  • 입력 1996년 12월 19일 20시 43분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정기국회 마지막날 여야는 밤 늦게까지 안기부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소속 의장단이 사실상 연금되는 등 격렬한 몸싸움만 거듭하다 결국 법안처리도 못한 채 회기를 넘겨버렸다. 우리 국회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수준 낮은 힘싸움으로 날을 새워야 하는지 참담하다. 대화와 타협으로 새정치를 이끌겠다던 15대 의원들의 대국민 약속은 철저하게 파기됐다. 이제 정말 합리적 국회운영을 위해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되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안기부법의 재개정은 본란이 이미 지적했듯 한반도 안보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한 이 시점에서 대공수사권의 공동화(空洞化)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가의 체제수호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치적 힘겨루기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의안이다. 작금의 안보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여야가 진지한 토론과 중지(衆智)를 모아 모양좋게 합의 처리했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여야는 의정(議政)의 정상적인 절차와 방식을 무시하고 몸싸움으로 결판을 내려했다. 이러고도 여야는 「새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안기부법 개정을 둘러싸고 국회가 이모양으로 치달은 것은 여야 모두 국민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이다. 정기국회 회기내내 제도개선 문제에만 매달려 예산안의 법정처리 시한을 넘기고도 여야는 국민의 질책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1년이나 남은 차기 대선(大選)에서의 유불리(有不利)만 생각하며 법안을 다뤘다. 16일 안기부법을 심의한 정보위원회가 15대 국회들어 처음으로 변칙처리를 한 것이나 야당이 몸싸움도 마다않고 결사저지한 자체가 대선전략과 연계돼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여당이 개정안의 회기내 무조건 통과를 지시하고 상임위에서부터 법안상정을 저지한 국민회의가 법안처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바람에 피해갈 묘책을 찾지 못했다. 정치력으로 문제를 푼다는 생각보다 오로지 「밀리면 안된다」는 대결논리에 집착했다. 여야 지도부는 이 과정에서 의원들을 사병(私兵)다루듯 했고 결국 15대 첫 정기국회를 파행(跛行)으로 끝냈다. 신한국당은 안기부법 개정에 실패한 후 바로 임시국회를 소집해 이의 처리를 재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회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연내처리는 저지키로 해 임시 국회가 소집돼도 또 한차례 격돌이 불가피하다. 국민대표란 사람들이 경건하게 한해를 보내고 맞기는커녕 온통 싸움질로 해를 넘기려하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소모적이며 국민불안만 가중시키는 정치는 더이상 안된다. 여야는 정기국회 파행운영에 대해 국민앞에 사죄하고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국회운영방안을 찾아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