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1세기를 향한 선택의 해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1997년은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과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해다. 올 연말의 대통령선거도 그렇지만 계속되는 경기 부진으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두드러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매우 심각한 마찰과 갈등을 몰아올 소지가 큰 한 해다. 새 노동법을 둘러싼 갈등은 이미 표면에 떠올랐다. 이 엄청난 시련과 도전의 해에 우리의 미래를 정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국민적 선택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하기 나름에 따라 일류국가로 발돋움하느냐 아니면 좌절하느냐가 결정되는 대전환기적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환경도 냉엄하다. 자유무역과 자본이동의 자유를 기둥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세계체제로 굳었다. 경제가 세계를 하나로 만든 세계화 속에서 기업은 무한경쟁이라는 거친 파도를 맞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도 이제 선진국의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강릉 무장간첩침투사건이 빚은 남북간 긴장은 방송을 통한 북한의 사과와 4자회담설명회 참석 동의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주민의 잇단 탈북(脫北)속에 권력세습의 공식화를 앞둔 평양정권의 내부 움직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새해에 국민적 선택을 기다리는 숱한 과제중에서도 으뜸은 대통령선거다. 민주주의의 정착과 다음 세기를 준비하며 역사의 디딤돌을 놓아야 할 제15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여야 어느쪽이 이기든 98년 이후 정치판도는 격변이 예상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선거전이 시작될 때까지의 정치과정은 여야 모두 대통령후보 선출방식에서부터 예측이 가능할 만큼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매우 유동적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올해 대선(大選)은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치러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어떻게 하면 21세기를 향해 국민 모두의 행복과 안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를 놓고 서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선거전이 되어야 한다. 공정하게 경쟁하는 모범적이고도 성숙한 미래지향적 선거전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경제회생과 사회기강확립 등 중요한 국가적 과제는 외면한 채 당선에만 눈이 멀어 지역감정 부추기기 등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선거운동을 벌인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올해에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할 또하나의 큰 요인은 계속되는 경기 부진과 경제전망의 불투명성이다. 불황은 실업을 증가시킬 것이며 특히 중고령(中高齡) 화이트칼라의 고용불안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선의 가장 큰 변수로 경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노사(勞使)모두 미래를 향한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조는 긴 눈으로 다음 세대의 고용문제까지 생각하면서 노사관계의 안정에 협력해야 한다. 특히 기업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기업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기업가 정신과 가능한 한 고용을 유지하고 늘려야 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실천해야 한다. 시장경제체제에서의 불황은 기업인의 창의력과 경영혁신으로 기업 체질을 강화해야 하는 진통기다. 기업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기업은 일터를 창조하는 곳이며 고용이 인간의 가장 큰 보람이고 사회보장이라는 인간존중의 책임의식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기업의 낭비적 요소는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대선의 해를 맞아 기업윤리를 더욱 높이고 정경유착의 부끄러운 과거가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처신하며 기업경영에 전념해야 한다.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면서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대통령선거를 모범적으로 치르는 일은 한꺼번에 닥친 힘든 과제이면서도 올해에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이 막중한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민주정치와 노사관계와 기업을 지배하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매우 중요하다. 자유사회를 지탱해야 할 내면(內面)세계의 도덕심과 윤리와 공공심(公共心)이 오늘처럼 절실한 때도 없다.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정체하는 늪 속에서 부정부패마저 만연하고 도덕심이 떨어져 사회기강이 풀어지게 되면 우리 사회의 발전은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깨달아야 한다. 올해는 金泳三(김영삼)정부의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이지만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은 매우 크다. 그 중에서도 김대통령이 해야할 가장 큰 일은 대선관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책임제 아래서 임기가 끝나가면 퇴임 전의 정치적 인기나 정권의 재창출 등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김대통령은 이러한 모든 정치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공정한 선거를 하여 역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문민대통령으로 기록되도록 역사의 소명의식을 가져주기 바란다. 김대통령이 역사에 큰 이름으로 기록되려면 먼저 인기를 의식한 또다른 개혁보다는 이미 착수한 개혁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각종 실명제의 정착을 위한 입법화, 정치군인의 추방에 따른 군의 안정과 국방력강화, 부정부패 척결의 제도화가 그것이다. 특히 경제의 대선쟁점화를 의식한 정책수단의 무리한 선택이나 실적올리기 및 선심성 행정은 하지말아야 할 것이다. 올해의 국민적 선택을 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안전과 평화가 그 전제조건임은 물론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대통령 임기말의 여야간 극심한 대립과 정쟁(政爭)은 자칫 국가적 과제의 해결능력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다. 여야는 책임소재가 분명한 책임정치로 국민이 선택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정치를 복원(復元)시키고 정정당당한 공당(公黨)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치가 비생산적이고 경제가 침체하며 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국민 모두는 근면 검소한 생활을 몸에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 구성원이 공유하는 법과 규범은 누구나 반드시 지키며 또 지켜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키울 때 희망의 새 세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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