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대학 4년이 끝나는 날 친구들과 강촌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춘천행 열차를 탔다. 기말고사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즉시 학교에 제출하려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가방에 리포트를 넣어 가지고 갔다.
열차가 강촌역에 멈췄을 때 허겁지겁 짐을 챙겨서 내렸다. 강촌역을 나오는 순간 나는 리포트가 든 가방을 두고 내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촌역 역무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찾을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역무원들은 재미있게 지내다가 서울로 돌아갈 때 다시 한번 들러보라고 말했다.
비록 내게는 중요한 마지막 리포트이지만 역무원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종이뭉치에 불과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춘천역에 연락하기도 귀찮을 것이다. 춘천역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휴지통에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포기하다시피 하고 강촌에서 실컷 놀고난 후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강촌역으로 갔으나 역 사무실엔 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들을 본 역무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따라 갔더니 따뜻한 커피와 함께 리포트가 든 손가방을 건네는 게 아닌가.
감사하다는 인사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는 그 분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공무원은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마치 따스한 사랑이 감도는 한 편의 휴머니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안 진 희(서울 중랑구 망우3동 519의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