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14)

  • 입력 1997년 1월 14일 20시 22분


첫사랑〈14〉 아저씨의 답장이야 당연히 없었지요. 아마 보낸 사람의 주소를 썼다 해도 아저씨는 답장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그 무렵, 그러니까 「명작의 고향」 연재가 끝난 다음부터 그 신문 문화면의 다른 지면에서도 아저씨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재를 마칠 즈음 회사를 그만두었나, 아니면 기사를 쓴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다른 부서로 옮겼나, 참 여러 생각이 여자 아이의 머릿속을 오갔습니다. 내 편지가 아저씨 손에 닿기나 했을까, 아니면 받을 사람도 없고, 보낸 사람도 없는 편지니까 누가 겉봉을 뜯은 다음 찢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을 했던 것도 편지를 쓴 다음 한 달 넘도록 그 신문의 어느 지면에서도 아저씨의 이름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고, 수능 시험 날짜가 발등의 불처럼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데 때로는 멍하니 책상에 앉았다가도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이 먼저 가슴 속의 그리움을 알고 아저씨의 기사 스크랩 북을 꺼내들곤 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사랑을 그렇게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아니 「사랑이라면」이 아니라 열아홉 살의 여자 아이에겐 틀림없는 사랑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날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게 이미 혼자 조금은 깊게 빠져들기 시작한 그 아저씨의 도움으로 책을 읽을 때마다 단지 아름답고 슬프다는 것 때문에, 또 무작정 빠져들고 싶기도 했던 그런 「비극적」인 사랑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대상은 다르지만 또 한 명의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 옆에 있었던 가을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 번도 시인을 본 적이 없지만, 늘 시인 같은 얼굴로 시인처럼 말하던 국어 선생님이 그 가을에 결혼했습니다. 상대는 우리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을 수 있는지요. 『그 여우가 선생님을 호린 게 틀림없어. 그건 말이 안돼』 정말 어느 쪽이 말이 안되는 건지요. 전에 난 선생님이 다른 여자하고 결혼하면 죽어버릴 것 같아, 하고 두번이나 만약에, 만약에를 달고 말한 그 친구는 안갈 줄 알았던 선생님의 결혼식에까지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을 보러 간 게 아니야. 여우가 어떤 꼴을 하고 있나 보러 간 거지?』 『보니까 어때?』 『선생님이 불행해 보여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 그 친구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랑은 비극적이고, 그런 모든 비극적인 사랑은 우리 가슴에 다 아름다우니까. <글: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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