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 입력 1997년 1월 15일 20시 19분


금융실명제를 새로 실시할 때 또는 대학 입학시험 제도가 바뀔 때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제도의 변화가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노동법의 개정안이 발표되거나 통과됐을 때도 보통 기업가들과 보통 근로자들은 그 개정안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은 무엇이고 불리한 점은 무엇인가부터 열심히 계산한다. ▼ 제도 변경과 국가 장래 ▼ 만약 金九(김구)선생이나 安昌浩(안창호)선생이 생존해 계신다면 그들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나 기존 제도의 변경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까. 아마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그러한 제도의 신설 또는 변경이 우리나라 전체의 장래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부터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위인과 보통사람이 다른 점이다. 현대와 같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대다수의 시민에게 위인의 길을 밟으라고 설득한다 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역시 보통사람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도자 또는 애국자임을 자처하는 인사들 가운데서는 위인의 길을 밟는 사람들이 상당수 나타나야 마땅하다. 조국의 민주화와 발전을 위해 정계에 뛰어 들었다고 공언한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의 경제계 또는 노동계를 이끌어가는 공인(公人)으로 자처한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계산하기에 골몰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제 시대가 그러했듯이 어쩌면 일제시대보다도 더 절실하게 오늘의 한국은 나라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위대한 인물을 갈망하고 있다. 지위도 힘도 없는 사람이 나라사랑의 충정을 외친다 해도 큰 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위인의 길을 밟는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보통사람들에도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 안목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이다. 목전의 이익만을 계산하는 사람들은 나라 전체의 흥망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일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은 우선 국가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주력하고 그 다음에 국가의 번영이 가져다줄 결과의 정당한 몫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오늘의 한국은 경제와 안보를 위시하여 여러 측면에서 매우 어려운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난국을 극복하는 일이 우리들의 급선무이며 지금은 우리 모두가 이 급한 불을 끄는 일에 매달릴 때다. 비록 보통사람이라 하더라도 긴 안목으로 계산한다면 이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주변에는 이 급한 불을 외면하고 단기적 안목으로 각자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위인과 소인의 다른점 ▼ 보통사람들도 현명한 보통사람이라면 긴 안목으로 계산하고 그 계산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보통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리석은 보통사람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 꼴이다. 공인의 위치에 있는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는 이 어리석은 보통사람의 길을 선택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 길로 선동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위인의 길은 못 가더라도 현명한 보통사람의 길은 가야 할 터인데 그 길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정치 싸움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국민을 정치 싸움으로 몰고 갈 때는 더욱 아니다. 나라 전체부터 우선 살려야 한다. 우리 모두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고 있다. 金 泰 吉 <서울대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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