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여순-함평 양민학살」진상 밝혀라

  • 입력 1997년 1월 16일 20시 25분


1년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자 양민학살사건 관련 희생자 유족들은 환영 일색이었다. 48년 제주사건 이래 54년 지리산에 평화가 깃들 때까지 7년 동안이나 영호남의 산골마을 주민들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 백성으로 가슴졸이며 살아야 했다. 공비토벌을 핑계로 자행됐던 양민학살로 선량한 주민들이 얼마나 희생됐던가. 그런데 최근 함평 양민학살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이 법을 근거로 6.25때 억울하게 학살된 희생자 5백24명에 대한 명예회복을 신청했다가 반려돼 반발이 심하다. 총리실은 이 특별조치법이 거창 산청 함양 3개 지역 주민들의 청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이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려사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 법에는 두가지 큰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다. 첫째로 당시 토벌작전에 동원된 군경으로부터 공비라는 이유로 양민이 학살된 사례는 6.25 때 말고도 제주사건 여순사건 그리고 태백산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숱한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6.25 때로만 못박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둘째로 청원을 냈다는 3개 지역 외에도 당시 토벌작전이 벌어졌던 곳이라면 어디서나 양민학살이 거침없이 자행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설사 특정 지역에서 청원이 들어왔더라도 정부는 마땅히 당시 토벌작전이 벌어졌던 전지역을 대상으로 관련사례를 조사해 일괄입법해야 옳았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청원이 들어온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시적(限時的)인 한지법(限地法)을 만들었으니 졸속입법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당시 토벌작전만 해도 그렇다. 이른바 수벽청야(竪壁淸野)작전이라고 해서 엄청난 병력과 장비를 동원, 가는 곳마다 산간마을을 불지르고 걸핏하면 양민들을 통비(通匪)로 몰아 집단학살하는 일이 빈발했다. 여순사건의 비극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는 여수에서 1천2백명, 순천에서 1천1백34명이 반군에게 학살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진압군의 무분별한 즉결처분에 의해 희생됐다는 건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역사 바로세우기가 뭔가. 이제라도 여순 함평 등 양민학살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고 관련지역에 위령탑이라도 세우자. 이는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김 계 유<국사편찬委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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