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 (16)

  • 입력 1997년 1월 16일 20시 34분


첫사랑 〈16〉 그래서 편지를 전해준 회사 동료에게 그 우체국 주변에 있는 고등학교 삼학년 학생중 채서영이란 학생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편지라는 건 어디서나 부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런 부탁을 했던 건 서영양이 내게 보낸 편지처럼 나도 서영양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던 날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다고 그랬나요? 아니, 누구에겐가가 아니라 나에게 쓰고 싶었다고 그랬군요.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편지를 받은 다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답장을 쓰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일백이십회까지 남은 연재도 서영양을 생각해서라도 더 성심성의껏 했겠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그 연재에 대해선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꼭 다루고 싶어도 매주일 읽어내야 할 분량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일곱 권짜리 책으로 소개된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페테르부르크는 그때까지 가 보지 못했습니다. 이곳 파리로 온 다음 한 달도 더 지나 지난 십일월에야 모스크바와 돈강과 페테르부르크를 둘러보았습니다. 진작에 그곳을 둘러보았다면 그때 서영양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더 좋은 글을 썼을지도 모르지요.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차이란 늘 있는 것이니까. 때로는 보지 않았기에, 혹은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기에 조금은 더 용감해지는 부분도 있겠지요. 「명작의 고향」에 대한 연재도 그리고 서영양의 편지와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도 말입니다. 파리에 와 가난한 생활을 해서인지 나 자신이 아름다운 소녀 바렌카에게 편지를 쓰는 마카르 제부스킨이 된 느낌도 들고요. 서영양의 편지를 서울에 있는 동안 받았다면 지금보다 더 빨리 답장을 쓸 수가 있었겠지요. 연락이 없는 회사 동료에게 다시 한 번 재촉하여 알아낸 학교 주소입니다. 그렇지만 이 편지가 서영양에게 바르게 도착할지에 대해서는 왠지 자신이 없군요.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 서울은 대학 입학 시험이 한창이겠군요. 부디 좋은 소식있기를 바랍니다. 안녕. 나도 언제나 서영양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서영양의 얼굴을 모르는 아저씨 씀―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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