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명동성당 내 가장 후미진 곳인 성모동산. 민주노총 權永吉(권영길·56)위원장 등이 이곳에 천막을 치고 생활한지 벌써 28일째. 전날 여야영수회담에서 구속영장 집행이 유예되면서 권위원장 등은 일단 「수배자」의 처지에서 벗어나 약간은 자유로운 신분이 됐다.
성당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병력도 전날 밤 모두 철수해서인지 그동안 성모동산에 감돌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던 사수대 4, 5명이 화톳불을 쬐고 있는 모습은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닐과 폴리에스테르 등을 2, 3중으로 덮어 만든 천막안에서 스티로폼을 깐 바닥위에 앉아 회의를 하고 있는 지도부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굳어있었다.
『실제적으로 얻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권위원장은 『노동법 무효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랍 16일 노동법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삭발했던 권위원장의 머리도 이제는 제법 길어졌다.
「자유로운」 신분이 됐으니 성당을 떠나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정성희대외협력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당 철수요? 아직은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그는 『아직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도부의 거처를 옮기는 문제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이번 사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명동성당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에 대한 사전영장 집행유예에 대해서도 『완전히 취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 번복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성모동산에는 현재 지도부 천막 외에도 두개가 더 늘어난 상태. 처음에 대충대충 지었던 천막은 계속 「보수공사」를 해 지금은 출입문까지 갖췄다.
천막이 번듯해질수록 명동성당이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올 날은 더욱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