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박완서씨,네팔-티베트 여행기 「모독」펴내

  • 입력 1997년 1월 29일 20시 19분


[鄭恩玲기자] 「티베트땅에 첫발을 딛으며 한 일은 부랴부랴 선글라스를 끼는 것이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 작가 박완서씨의 티베트땅에 대한 기억은 싱싱하다 못해 위협적이기까지 했던 햇빛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5월 열흘간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네팔을 여행했던 박씨는 그때의 여행단상을 최근 「모독」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엮어냈다. 학고재간. 「모독」은 학고재가 펴내는 「세계문화예술기행」시리즈의 제1권이다. 각종 해외여행 안내서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지만 「세계문화예술기행」은 일반적인 안내서와는 다른 방법으로 타 문화와 민족에 접근한다. 「세계문화예술기행」의 저자들은 소설가 시인 등 작가. 출판사는 여행경비를 댈 뿐 「어디를 둘러보고 무엇을 쓸 것인가」는 시리즈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직접 결정한다. 박완서씨에 앞서 소설가 김영현씨가 평소 꿈꾸던 실크로드를 순례한 뒤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를 펴냈으며 시인 김혜순씨의 스페인 기행기, 소설가 최수철씨의 이집트 기행기가 이미 출간됐다. 시인 황지우 김승희, 소설가 이인화 임철우씨 등도 이탈리아 마야 몽골 아일랜드여행을 마치고 원고 집필에 한창이다. 이국땅을 떠도는 작가들이 눈여겨본 것은 「그곳에 가고 싶던」 이유가 다르듯 제각각이다. 그러나 여행자들이 소개하는 것이 유적이나 쇼핑센터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물이 아닌 것만은 한결같다. 한국땅에 살며 급격한 자연파괴에 공포심마저 품고 있던 작가 박완서씨는 「완전순환」을 이루는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에 감동한다. 풀 한포기 보기 어려운 황량한 산야가 끝없이 이어지고 산소조차 희박한 땅이지만 티베트인들은 나무대신 고산동물 야크의 똥을 연료로 삼고 그 가죽으로 유목용텐트를 만들며 인분은 거름으로 이용해 무엇하나 함부로 버리는 것없는 생활을 한다. 간소한 살림에도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애써 차 한잔을 대접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고향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인류의 마지막 이상향」을 꿈꾸며 티베트로 가려는 여행객들에게 박씨는 「우리의 관광행위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순환의 땅엔 모독」이라는 자괴에 찬 경고를 던진다. 중국의 식민지로 편입되고 서방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노출되기 전까지만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유스럽고 무엇보다도 굶주림 모르는 생활을 해왔던 티베트인들이 이제는 아이어른할 것 없이 『헝그리』를 외치며 관광객에 들러붙는 비루한 모습으로 전락해 가는데 뼈아픈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먼곳으로의 여행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 각박한 땅에서 나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했다』고 박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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