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필드·쾰른〓이진영기자] 영국 셰필드에 사는 그레이슨부인은 열 살짜리 딸 린제이가 학교에 갈 때마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하나 들려 보낸다.
비닐봉지 속에는 린제이가 먹고 버린 요구르트병, 머핀을 쌌던 은박지, 자투리헝겊, 동강난 털실, 달걀껍질 등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 있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학교에 갖다주면 교실벽을 치장하거나 아이들이 공작시간에 사용하는 훌륭한 재료가 되지요. 정말 버릴 것이 없어요』
무릎나온 바지에 후줄그레한 티셔츠를 걸쳐입은 알뜰주부 그레이슨은 학교 공작시간 준비물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알뜰한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에게도 용돈을 기분내키는 대로 주지 않는다.
독일 지겐에 사는 카를린(12)이 일주일에 받는 용돈은 10마르크(우리돈 약 5천5백원). 4마르크인 맥도널드 햄버거를 2개 사먹으면 2마르크가 남는 돈이다. 한창 돌아다닐 나이여서 자질구레한 액세서리와 티셔츠를 사느라 카를린은 늘 용돈이 모자란다. 친구들과 11마르크 하는 영화구경이라도 가려면 한달동안은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야 한다.
가끔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만 아버지는 외동딸에게 한 주일의 용돈 외에 1마르크 이상 더 주는 법이 없다. 아버지 구두를 닦거나 엄마대신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다녀와도 1마르크 이상은 벌지 못한다.
카를린처럼 「박봉」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네의 「플로 마르크트」(벼룩시장)를 자주 이용한다. 매달 동네에 플로 마르크트가 서면 카를린은 세 살 아래 남동생 크리스티앙과 함께 필요 없는 장난감과 소지품을 싸들고 나간다. 동생의 일주일 용돈은 4마르크로 카를린보다 훨씬 적다.
헌 동화책 크레파스 인형 퍼즐 등을 1마르크씩 받고 판다. 카를린은 이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다른 친구들이 들고나온 스카프 인형옷 머리핀 등을 산다. 지난달에는 큰 마음먹고 그날 번 5마르크를 몽땅 털어 바비인형을 샀다. 공룡을 좋아하는 크리스티앙은 플로 마르크트에서 1마르크 하는 공룡인형 시리즈를 사모으는 게 취미다. 어린이들 뿐만이 아니다. 독일사람들은 동네나 학교에서 매달 혹은 1년에 2,3차례 열리는 플로 마르크트에는 빠짐없이 들린다.
평소에도 학교 게시판을 이용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헌 물건을 사고 판다. 유치원이나 학교의 게시판에는 「세발 자전거. 10마르크. 베네딕. 전화번호 ×××」 「스키와 폴. 무료. 마크. 전화번호 △△△」등 아이가 커서 필요없는 물건을 내놓는 쪽지가 수도없이 붙는다. 「우리 아이에게는 필요없는 물건이니 공짜로 가져가라」는 메모도 있다. 여러번 빨아 화학성분이 완전히 빠져버린 속옷은 새옷보다 더 좋아한다.
알뜰함이 몸에 배어있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공주」나 「왕자」처럼 입히려는 욕심도 없다.
『잘 사는 집이 왜 아이에게 헌 옷만 입히세요』
독일에서 8년동안 살았던 김안나씨(36·강원 강릉시 포남동)는 지난 93년 7월 귀국한 뒤 12세짜리 아들 원빈이를 초등학교에 전학시키고 나서 여러사람한테서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독일에서처럼 떨어진 가방에 구멍난 양말을 기워 신기고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힌 것이 「구두쇠」로 비친 모양이었다.
하루는 원빈이가 학교준비물로 모래주머니와 걸레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 보냈다. 그러자 집으로 돌아온 원빈이는 『엄마, 내것만 빼고 다른 아이들 것은 모두 똑같아. 모두 문방구에서 사왔대』하는 것이었다.
김씨는 『독일에서는 비오는 날이 아니면 구멍난 신발을 신고 무릎이나 팔꿈치에 헝겊을 덧대 기워 입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귀국해서도 그렇게 했더니 너무 「튀는」 것 같아 이제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 웃었다.
아이들이 보는 책에도 턱없이 비싼 돈을 쓰는 일은 없다. 유치원이나 학교뿐만 아니라 동네 도서관 시설이 잘 돼있어 책을 빌려보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