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박완서/충신과 친구

  • 입력 1997년 2월 23일 20시 08분


몇가지 유행어만 남기고 한보사태도 신속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유행어 속에 끼지도 못했지만 충성(忠誠)이니 충신(忠臣)이니 하는 말도 권력의 핵심과 연관된 혐의가 짙은 부정부패가 터져나올 때마다 신문지상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말이다. 복잡다단한 정치권의 계보를 말할 때 누구는 누구의 충신이란 식으로 분류를 하면 참모나 측근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비중있게 들린다. 모시는 이가 불우했을 때부터 섬기기를 여일하게 해왔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모시는 이가 다치지 않도록 기꺼이 자기가 죄를 다 뒤집어 쓸 것이라는 비장한 여운까지 풍긴다. ▼ 유행어만 남긴 「한보」 ▼ 우리 어렸을 때 흔히 듣던 옛날 자장가는 「나라에는 충신동이, 부모에는 효자동이, 형제간의 우애동이…」로 시작됐다. 자장가라기보다는 일종의 덕담이었지만 촌의 필부가 그지없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강보에 싸인 자식에게 그런 자장가를 불러줄 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식의 출세를 바라거나 난세의 충신노릇을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충절을 인간덕성의 최고경지로 여긴 소박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요새도 우리는 입대한 아들을 면회가서 『충성』하고 늠름하게 외치며 올려붙이는 경례를 받으면 뿌듯하고 대견하며 국민의례 때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할 때는 억지로라도 숙연해진다. 가부장문화와 군주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념으로서의 충성이 민주사회에서도 이렇게 유효한 것은 군주 개인의 혈통에게 바치던 헌신과 사랑과 의무를, 정의와 민족과 국가라는 한 단계 높은 곳을 향해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충성과 충신을 집사(執事)나 마름 정도밖에 안되는 인품에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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