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현장/오태석의「태」]생명의 끈으로 파헤친 한민족

  • 입력 1997년 3월 7일 08시 21분


[김순덕 기자] 오태석의 연극은 산자와 죽은자,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역사가 뒤엉켜 있다. 서로 충돌하면서 화합하고 끝내는 끌어안고 뒹군다. 이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무대는 검은 병풍 두쪽뿐, 온통 검은 빛으로 텅 비어 있다. 국립극단이 20일까지 국립극장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오태석 작 연출의 「태」는 가장 원초적 생명끈이랄 수 있는 탯줄을 통해 한국인의 원형을 뼛속까지 파헤치는 연극이다. 표면적 소재는 단종의 양위와 세조의 등극. 막이 오르면 출산을 상징하듯 검은 병풍이 좌우로 벌려지고 해맑은 얼굴의 단종이 걸어나와 어린애가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어색하게 양위교서를 발표한다. 곧바로 무대는 사육신 등 선왕의 신하를 제거하는 피투성이의 산실로 바뀐다. 사회적 차원에서 탯줄을 끊는 것이다. 멸족을 눈앞에 둔 박팽년의 며느리는 뱃속의 아기를 살려 대를 보존하기 위해 여종의 자식과 바꿔치기한 뒤 자살한다. 며느리가 출산할때 사육신의 망령들이 피처럼 붉은 강보를 들고 출산을 돕는 장면은 자못 충격적이다. 새생명은 사육신의 상징적 핏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자식을 뺏긴 종은 실성한채 『창지야…창지야』하고 아이를 부르며 무대를 헤맨다. 울부짖음이 객석을 흔든다. 단종과 사육신의 죽음으로 광기에 빠져 있던 세조가 이 사실을 알고난 뒤의 반응은 뜻밖이다. 어명을 어긴 죄를 처벌하기는커녕 한시간 반동안의 공연 중 처음으로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강보에 싸인 어린 생명을 통해 비로소 산자와 죽은자가, 심지어 피투성이의 무대와 객석의 관객이 화해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1974년 초연된 뒤 86년 아시아경기, 87년 일본 공연이후 10년만에 재공연되는 작품. 빠른 속도감과 감각적 볼거리에 젖어있는 젊은층에게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관극이지만 삶에 담긴 창조―파괴―생명의 순환구조를 곱씹어보게 하는 연극이다. 평일 오후7시반 토일 오후4시. 02―274―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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