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인도네시아]『신의 뜻대로』 만사 느긋

  • 입력 1997년 3월 7일 08시 21분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의 가르침은 자못 숙명적이다. 아침 저녁으로 모스크(사원)에서 들려오는 「신께 감사하나이다(알함둘릴라)」에서 시작해 「신의 뜻으로(인샤알로)」 라는 그들의 체념이 바로 세상사를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운명이란 모름지기 극복해야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기를 써야 하는 것과는 자못 거리가 있다. 연중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삼모작 벼농사가 가능한 나라. 1년 내내 바나나가 열리는 나라.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극단으로 치닫기가 힘들다. 그리 시끄럽지도 않다. 우리네가 즐기는 열탕 냉탕이 없고 온탕만 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국이나 얼음냉수가 없다. 이렇게 미지근한 것은 이들의 생활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곳곳에 배어 있다. 혹자는 이런 식의 중용에 대한 선호 때문에 나라발전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의 통치는 자바섬의 동쪽을 점하고 있는 자바인에 의해 이뤄져 왔다. 이들 통치이념의 제1덕목은 관용이다. 인도네시아 사람이면 모두가 다 아는 말에 「사랑하고 가르치고 감싸고(아시 아사 아수)」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와도 같은 것이다. 「조금 기다려라」는 표현은 이네들 생활에서 무수히 쓰이고 있으며 이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심각한 분주함 보다는 미소의 여유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는 말까지 있다. 감정의 억제가 사람과 짐승을 구분짓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한국언론은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일련의 반정부시위를 보도하면서 이 나라 국민들이 30년 수하르토 독재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수하르토 정권의 종언이 코앞에 닥쳐온 듯이 보도했다. 우리의 잣대로 남의 현실을 잰 것이다. 군시절부터 「미소짓는 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하르토대통령은 오늘도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영수(인도네시아 상사 주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