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 미국 따로 만나기

  • 입력 1997년 3월 9일 09시 20분


북한과 미국은 어제 뉴욕접촉에서 준(準)고위급회담을 정례화(定例化)하기로 합의했다. 이같은 합의는 공식적인 접촉채널이 北―美(북―미)간에 새롭게 개설됐음을 뜻하는 것이다. 양측은 그동안 주로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필요할 때마다 접촉해 왔지만 이처럼 고위급 인사들의 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북―미간 관계 진전은 어떤 형태든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례화하기로 한 준고위급회담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무엇이 논의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북―미간의 관계진전은 그러나 남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본원칙을 전제로 하고 그 틀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당사자는 남북한이기 때문에 남북한간의 대화가 우선이라는 원칙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는 애써 외면하고 「백배 천배 보복」협박을 서슴지 않는 등 첨예한 대립을 조장해 왔다. 이런 마당에 북―미 관계가 급진전된다면 무슨 뒷거래가 없는지 의심을 살 뿐이다. 물론 미국측도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94년의 북―미간 제네바핵합의를 보더라도 북―미간의 관계진전이 남북한간의 관계 진전과 꼭 일치하지 않았다. 제네바핵합의의 골간인 남북대화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북―미간의 접촉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평양과 워싱턴간의 접촉확대는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을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또 북한 스스로 폐쇄 고립정책의 탈을 벗고 개방과 개혁정책을 택해 국제무대에 나오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북한과 미국사이에는 미군 유해 송환문제 등 순수한 양자간의 협상이 필요한 현안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미간의 현안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사안들이다. 북―미간의 어떠한 접촉일지라도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양자문제든 아니든 북―미간의 「물밑거래」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미국은 북한과의 접촉에서 사전 사후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협조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북―미관계의 진전은 남북한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속도에 연계돼야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 스스로가 한국과의 대화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만 상대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준고위급회담이 그러한 착각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절대로 안된다. 미국은 한국과의 대화가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라는 사실을 북한측이 깨닫도록 신중히 회담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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