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음악가 ○○○가 살던 집」 혹은 「시인○○○의 생가」등 팻말을 흔히 만나게 된다. 더러는 집 안에 그 예술가가 사용하던 가구, 읽던 책, 써놓은 필적 등을 진열해 놓고 작은 박물관을 차려놓기도 한다. 그러면 안내자는 하나 하나 마치 국보라도 되는 양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데 가구나 책, 문방구 같은 것이 대단한 것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모르고 보았다면 그저 그렇고 그런 물건들이다. 오로지 그 예술가의 사연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연신 감탄하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보고지나가는 돌과 집이 실은 소중한 문화유산일 수 있다. 주변의 문화유산을 알아 볼 눈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부자가 된다. 일상적인 거리가 역사적인 거리로 변하고 보통의 집이 얘기를 담은 집이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이 그냥 눈에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의미를 찾아낼 줄 아는 눈으로 바뀐다.
우리는 먼곳의 얘기는 곧잘 신화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사는 곳의 신화는 쉽게 평범한 얘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슈베르트나 괴테의 경우라면 사사건건 신비화하고 떠받들어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올려 놓으려하는 반면 자기 옆에 있는 예술가는 일상적인 세계 안에서만 보려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슈베르트나 괴테 역시 그들의 이웃들과 함께 일상적인 삶을 나누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우리 시대의 신화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먼곳의 신화로부터 깨어나 우리 시대의 신화로 돌아오는 일이야말로 문화창조를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일 것이다.
이건용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