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4)

  • 입력 1997년 3월 10일 08시 16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19〉 『기다렸어. 며칠 째 보이지 않으니까 무슨 일인가 걱정도 되고』 그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그의 눈은 방금 전 계단을 오르며 노란 나무 숲 사이로 바라본 하늘처럼 맑고 깊었다. 『그런 사람이 전화도 한 번 안하고…』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하지 못했어』 전철 역을 나와 지나가는 학생들 몇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왜요?』 『그 이야긴 이따가 하고, 우선 타』 그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은 채 오토바이 뒷자리에 비스듬하게 걸터앉았다. 오랜 만에 긴 치마를 입었던 건 아직도 조금은 불편한 몸 때문이었다. 옷장에서 아침에 입고 나갈 옷을 꺼내들 때 몸이 먼저 알고 긴 청치마에로 손이 가게 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는 짧은 치마로 다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인문 이호관에 수업이 있어요』 『알아. 이제 서영이 시간표.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맞추어 나와 기다렸던 거야. 지난 금요일에도 그랬고. 이틀씩이나 안 보이니까』 『난 운하씨 전화만 기다렸어요』 『알아, 그것도』 『그런데 왜 안 해요. 내 전화는 내가 받는데』 『어디가 아팠는데?』 『몸에 열이 많이 났어요』 『몸살이었구나』 『처음엔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요? 나, 그날 운하씨하고 헤어지고 나서 마음의 무슨 열병을 앓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몸에서 열이 나는 거라고』 『이제 갈 거니까 잘 잡아』 그가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오토바이는 여전히 낡은 엔진 소리를 냈다. 그의 헬멧도 칠이 벗겨져 여전히 얼룩덜룩했다. 아까 두 사람을 힐끔거리던 학생들이 그 옆을 지나자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저희들끼리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런 건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앓고 났을 때마다 하나씩 배우고, 하나씩 깨닫는 것 속엔 어쩌면 그런 것도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이제 조금씩 용감해지기.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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