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28)

  • 입력 1997년 3월 17일 08시 25분


제7화 사랑의 신비〈14〉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완전한 정적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 기분 나쁜 정적이 감도는 산기슭에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현무암 덩어리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게다가 산을 올라감에 따라 그 검은 돌덩어리들은 점점 더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파리드 왕자는 그 돌들이야말로 파리드 자신보다 먼저 이 불길한 계곡을 찾아왔다가 불운을 당한 귀공자들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닫게 되었으니 그때 문득 그 깊은 정적의 밑바닥에서부터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기분 나쁘고 불길하게 느껴졌던지 파리드는 순간 확 소름이 끼쳤다.

일단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웅성거림은 멎을 줄 몰랐다.

그 소리는 차츰 커지면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절망에 차서 내쉬는 한숨 소리, 공포에 찬 외마디 비명 소리, 고통에 찬 신음 소리, 슬픔으로 울부짖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어디에선가 뚜렷한 외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이 놈! 뭐하러 왔느냐? 너 이 놈, 거기 섰거라!』

그 소리에 놀란 파리드 왕자는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그 소리에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은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놈 잡아라! 죽여버려라!』

『밀어서 쓰러뜨려라! 그리고 목을 비틀어라!』

『돌려 쳐라! 그리고 눈알을 빼버려라!』

이런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파리드 왕자는 그런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없이 계속해서 산을 기어올랐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더욱 거세어지면서, 바로 등뒤에서, 바로 귓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입김이 얼굴에 확 느껴졌고 파리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나무 밑의 그 노인이 일러준 것을 잊어버린 채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파리드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무시무시한 외침 소리는 일시에 뚝 그치고 다시 그 무거운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리드 왕자는 하나의 검은 현무암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저 산 밑에 세워두었던 그의 말도 하나의 커다란 돌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죽음의 계곡까지 왕자를 인도해 왔던 붉은 구슬은 다시 구르기 시작하더니 나무 밑의 노인에게로 되돌아갔다. 모든 것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파리자드 공주는 허리에 차고 있던 그 작은 칼을 뽑아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맑게 빛나기만 하던 칼날이 어느새 빨갛게 녹슬어 있었던 것이다. 공주는 창백한 얼굴이 되어 파루즈 왕자에게로 달려갔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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