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반경 유치원 문을 열면 엄마의 손을 놓고 조그만 체육관으로 들어간다. 30분 뒤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 친구들과 신나게 공놀이를 한다.
한시간 가량 찰흙을 갖고 노는 시간도 즐겁다. 자동차 책 토끼 등을 만들며 쉴새없이 재잘댄다.
10시가 되면 교실바닥의 매트 위에 앉는다. 국기에 대한 경례, 날씨 얘기, 합창이 이어진다. 집에서 있었던 일도 차례로 나와 친구들에게 얘기한다.
대리얼은 이때부터 딴전을 피우기 시작한다. 선생님이 열심히 노래를 가르치고 설명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눈치를 봐가며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한시간이 지나면 신나게 놀 수 있어』 대리얼은 따분함을 억지로 참으며 속으로 중얼댄다. 자유놀이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겨운 시간이 끝나자마자 대리얼은 모형 부엌과 식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여자친구 제라딘과 「부부」가 된다.
『식사 준비해요』
『나도 도와줄게』
대리얼은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 제라딘 옆에서 당근과 호박을 씻는다. 대충 먹는 시늉을 하고 나면 설거지 순서다.
교실 저쪽에서 다른 친구들은 블록놀이와 산수게임을 한다. 부엌과 식탁에서 노는 남자 어린이는 대리얼 뿐이다.
남미 출신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대리얼은 원래 성격이 활달하다. 어딜 보나 여자아이 놀이를 할 것 같지는 않다.
대리얼이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한 것은 한달전.
데바니 선생님이 『엄마 아빠는 집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었다. 대리얼은 별다른 생각없이 『식탁을 차리고 치우는 건 모두 엄마 일』이라고 말했다.
데바니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됐다. 『엄마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계시면 말이야』
『……』 대리얼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아프면 식구들이 굶어야겠네』 데바니 선생님은 대리얼의 생각을 끌어내려고 애썼다.
대리얼은 엄마가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빠가 세탁기를 돌리고 두살 위 누나가 청소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2,3분을 망설이던 대리얼이 입을 열었다. 『아빠가 대신 해야죠. 누나와 저는 설거지를 하고…』
데바니 선생님은 대리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해 했다. 『남자와 여자, 아빠와 엄마의 일이 무조건 다른 건 아냐. 힘들땐 서로 도와야지』
곰곰이 생각하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대리얼은 그때부터 변했다. 처음엔 연습 삼아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가장 즐거운 놀이가 됐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시의 구리하마 유치원. 불교 계통의 사립 유치원이다. 하시즈메 도모야(5)는 이곳에 다니는 7백20명의 어린이 중 한명이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하시즈메는 같은 반 여자친구인 모리 나사미의 옆을 바싹 붙어 다닌다.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엔 함께 흙놀이를 한다.
하시즈메가 모리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청한 건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누나때문이다. 남자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얻어맞아 울면서 집에 돌아온 모습을 본 것이다.
『힘이 세다고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면 안되지』 엄마의 말씀을 듣고 누나의 멍든 얼굴을 보면서 하시즈메는 유치원 여자친구에게 짖궂게 장난치던 일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다마기 벤류(玉木弁立) 원장은 『어린이에게 이성존중 교육을 특별히 시키는 것은 없다.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도와주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