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받은 정치인 다 공개하라

  • 입력 1997년 3월 24일 20시 08분


검찰이 지난번 한보수사에서 한보측 돈을 받은 정치인 명단을 확보했으나 죄를 묻기는커녕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한마디로 「鄭泰守(정태수)리스트」가 있었던 게 사실인데도 검찰이 감추고 수사를 축소했다는 이야기니 그런 수사를 국민들이 믿지 못한 건 당연하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처리를 해야 옳다. 崔炳國(최병국)전 대검중수부장이 한보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처리과정을 밝힌 내용은 참으로 불쾌하다. 선거자금 명목으로 정치인 10여명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정씨에게 듣고 수사계획도 세웠다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수사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수사를 그런 식으로 얼버무렸으니 검찰인지 정치적 이해집단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또 수사기밀이 새어나가 민주계의 PK(부산 경남), 경복고 출신인사들간 다툼에 악용돼 수사를 포기했다니 검찰이 정치권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얘기 아닌가. 애초 검찰은 구속한 洪仁吉(홍인길)의원 등 4명 외에 여야 의원 십수명이 한보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정태수 리스트」 같은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최전중수부장은 한술 더 떠 『정치자금을 받은 것은 처벌대상이 아니다. 대가성(代價性)이 있어야 한다』며 수사계획조차 없는 양 발표했었다. 그런 그가 말을 바꾼 배경이 궁금하지만 어쨌든 검찰이 정치적 판단으로 정치권 수사를 축소 은폐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해 왔으나 성역은 분명히 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한보 돈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든 국민 앞에 그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정치자금법만 놓고 죄의 유무를 따질 때가 아니다. 세금도 안내는 돈을 숨어서 수천만원씩 받아 챙겼는 데도 정치자금 운운하며 눈감는다면 우리사회의 뇌물 악행(惡行)은 뿌리뽑지 못한다. 시체말로 세상에 누가 아무 대가도 없이 수천만원씩 공돈을 주겠는가. 정치자금법에서 규정한 정치자금은 선의의 자금을 말한다. 정치행위를 빙자해 부끄럽고 추한 방법으로 돈을 주고받았다면 그것은 상식적으로도 뇌물이지 정치자금이 아니다. 全斗煥(전두환) 盧泰愚(노태우) 두 전대통령 재판때도 그 점을 인정해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한 바 있다. 한보 돈을 받은 정치인들도 같은 맥락에서 처벌함이 마땅하다. 검찰이 중수부장을 바꿔 한보재수사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정치인수사를 회피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절대 얻지 못한다. 정치적 고려로 수사를 중단시킨 검찰총장이 그대로 수사지휘를 맡는 것도 못미더운데 또 성역을 둔다면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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