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은 금 은과 함께 인류가 제일 먼저 발견해 사용해온 금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무기류에서 종종 발견되며 고려시대 청기와에도 납 화합물인 황단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서양에서는 3천여년전 아시리아의 유적에서 납이 출토된 적이 있다. 납의 용도는 그 역사 만큼이나 다양하다. 납 자체가 금속재료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물론 안료 케이블 축전지를 만드는데도 사용된다
▼납이 인체에 축적되면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고대 로마인들이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목욕 등 이른바 「물」문화가 발달한 로마에서는 그 당시 벌써 수도관을 통해 먹는 물을 공급했다. 수도관의 재료로는 구하기 쉽고 가공이 편한 납이 사용됐다. 유독한 납성분은 물속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결합, 탄산납의 형태로 로마인의 몸에 들어가 계속 축적됐다. 결국 납중독은 유행처럼 번져갔다. 로마제국의 멸망이 납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는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오늘날 납에 대한 경계심은 높아졌어도 납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매한가지다. 납성분은 우리 생활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량매연과 페인트 화장품, 심지어 어린이들이 쓰는 크레용에서까지 납이 발견된다. 납성분이 함유된 불고기판 10만여개를 만들어 시중 음식점 등에 유통시킨 무허가 주물공장 대표들이 엊그제 경찰에 적발된 것은 이제 먹을거리에서까지 납중독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불고기판들은 고물상에서 수거한 차량라디에이터 전선 등 공업용 폐철을 용광로에 녹여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는 조리기구의 유해성 여부를 가리는 당국의 검사과정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적이다. 허용기준치를 정해놓은 것 외에 납에 관한 정부차원의 규제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불고기판 말고도 시판되는 다른 조리기구나 식품용기들은 안심해도 좋은지 또다른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