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의 노구로 27일 한국을 방문한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총리는 도착 당일의 빈틈없이 꽉 짜여진 일정에도 『피로하지 않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28일 인촌(인촌)기념강연을 앞두고 가진 본사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평화는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적을 파트너로, 나아가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평화론을 강조했다.>>
다음은 페레스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
―귀하는 중동평화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과 철군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대한 귀하의 견해는….
『첫째는 돌이킬 수 없는 확립된 사실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더이상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자치를 누리고 있다. 두번째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잘 조직돼 있으며 아라파트는 우리(이스라엘)의 파트너이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평화의 포도주」를 맛보았고 앞으로 더 좋은 평화의 맛을 봐야 한다. 그것도 아주 근사한 와인으로 말이다. 셋째는 평화를 만들기란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라도 평화는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귀하는 지난 95년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거기엔 「평화는 힘의 우위만으로는 결코 이룩할 수 없다」는 귀하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런 신념은 변함이 없나.
『변함없는 나의 신념이다. 미국과 구소련간의 관계도 힘만이라면 평화가 있었겠는가. 전쟁을 막으려면 평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양보를 해야 한다. 서로 협력과 신뢰를 쌓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미국 간에 항상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럴 때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는가.
『양국간에 큰 불일치는 없다. 단지 전술상의 차이점은 있으나 미국은 항상 커다란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교회 언론 그리고 행정부 등 모두가 이스라엘의 힘이 되어왔다.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관계는 오래되고 역사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유일한 민주국가란 점에서 미국민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탁월한 대미 로비력을 각국이 부러워하는데….
『강한 후원을 받아야만 강력한 로비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의 든든한 후원이 있기에 우리의 로비가 먹혀든다고 생각한다. 성원이 있어야지 로비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스라엘 국민의 단결력과 결집력의 정신적 바탕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우리 민족의 단결력과 응집력은 고난과 위협과 믿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박해와 설움을 겪은 민족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장점이 됐다. 2차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유태인대학살)는 우리가 겪은 고통의 실례이다. 우리는 아랍권과 전쟁을 치렀다. 1948년 우리는 아랍 각국의 침략을 받아 방어전쟁을 치렀다. 병력과 무기 등 모든 면에서 우리는 열세였다. 군사적 정치적인 면에서 미국의 도움이 컸다』
▼ 5차례 전쟁 모두 승리
―이스라엘은 비우호적인 아랍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과 다섯차례나 전쟁을 치렀다(질문 도중 페레스 전총리는 「1만번도 더 했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귀국의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다섯차례 모두 전쟁을 치른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방어」한 것이다. 우린 승리했다. 그러나 군사적인 승리였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쟁취하려 한다. 「평화」를 얻는 승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이집트 영토를 되돌려주었다. 요르단에도 우리가 얻은 땅을 내줘야 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에도 상당 부분 자치를 허용했고 영토도 양보했다. 우리의 이같은 평화적 노력 없이는 지금까지 얻은 평화도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적(敵)을 동반자로 만들고 나아가 친구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루살렘을 공동수도로 하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들의 주장은 예루살렘을 두동강내자는 것이다. 나는 팔레스타인국가창설에는 찬성하지만 예루살렘분할기도에는 명백히 반대한다. 우리의 수도이다. 결코 「제2의 베를린」으로 만들지는 않겠다. 대신 문을 열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
―한국 역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같은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나라가 없다. 여기에다 북한의 상황은 불안정하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해달라.
『한국은 거대한 코끼리에 둘러싸인 것처럼 어려운 상황이다. 코끼리가 한번 움직이면 주변국은 흔들린다. 그러나 한국은 눈부신 경제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오랫동안의 군사정권도 청산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도 나왔다. 북한은 현재 매우 고립돼 있다. 러시아는 물론 오랜 후원자인 중국까지도 북한과의 관계에 만족해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은 너무 악화돼 있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영토에 관심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생각해보자. 땅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영토의 개념에는 지정학적으로 구분된 영토도 있지만 미사일이 미치는 영토개념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 과학성과 창조력을 이용해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을 육성, 21세기에도 민족의 번영을 이룩할 것이다. 한국자동차나 일본 TV가 무력때문에 팔리는건 아니지 않는가』
―귀하는 외무장관 재직시인 93년 시리아 등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판매 계획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어떤 결과를 얻었는가.
『북한은 좀 이상한 나라다. 왜냐하면 한마디로 자국민에 대한 해결책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당시 이란과 시리아로 수출하려는 북한에 이스라엘은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관련된 노력을 기울였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국민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북한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북한체제는 스스로 파멸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정부가 할 일은 북한의 붕괴에 대비, 기아와 난민문제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귀하가 일생에서 결정을 내리기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 어떤 상황이었나.
『모든 결정들이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엔테베 작전 때가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본국에서 5천㎞나 떨어진 우간다의 엔테베공항에 억류돼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구하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느라 힘들었다. 팔레스타인측과 평화협상을 벌이던 오슬로회담 때도 그랬다. 모두가 개인적으로도 위험하고 어려운 것들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수반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지.
『그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아랍측에 매우 중요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최근에도 원고를 끝냈다. 가제목은 「평화의 기사(騎士)」다. 그러나 국내외로부터 초청도 받고 강연도 해야 하기에 그럴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