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울 때 민간단체들이 앞장서 소비절약운동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에 나온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연례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의 민간 소비절약운동을 일종의 무역장벽이라고 또 다시 트집잡고 나섰다. 한국에서 과소비 억제운동이 전개될 때마다 되풀이 해 온 시비다.
50개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는 이 보고서는 한국이 상품 및 서비스분야 뿐만 아니라 투자 정부규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가장 까다로운 무역장벽을 치고 있는 나라라고 규정하고 무역제재를 가할 수도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 중 하나라고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자발적인 소비절약운동까지 시비하는 미국의 억지와 오만불손한 태도다.
연간 경상수지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고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외채 때문에 국가 신인도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어느나라 국민이라도 과소비추방을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자구노력이다. 미국도 80년대 후반과 90년대초 미국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외국상품이 국내시장을 휩쓸자 미국산 물건사기 운동을 전개했고 심지어 미국하원은 일종의 국산품애용추진법까지 만들었다. 그같은 미국이 한국의 소비절약운동을 트집잡는 것은 한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미국의 마구잡이 대한(對韓)통상압력의 부당성을 여러차례 지적해왔다. 미국은 지난해만 해도 우리정부에 국내통신업체들이 미국산 장비를 구입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지프형 자동차에 대한 세금인상철회, 건설 및 에너지관련 분야에 대한 미국기업의 참여폭 확대 등 무리한 요구를 일삼았다. 그같은 부당한 요구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번 USTR 연례보고서도 한국의 자동차시장을 비롯해 통신 금융 지적재산권 등 거의 전부문의 시장개방을 겨냥,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압력을 넣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이 일본 중국 유럽연합(EU)과 함께 미국의 무역제재 대상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 94년 이래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에서 매년 큰 적자를 보여왔고 적자폭도 해마다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대미(對美) 무역적자는 무려 1백16억달러로 작년 전체 무역적자 2백7억달러의 절반이상이 미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부당한 통상압력에 언제까지고 밀릴 수는 없다. 미국의 대한통상압력은 다자간 협의체인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정신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통상압력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단호하고 확고한 논리와 자세로 당당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