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 허니문 새명소]몰디브제도 수도 말레섬

  • 입력 1997년 4월 3일 08시 27분


1천3백여개 섬으로 구성된 몰디브제도에서 가장 주민이 많은 섬은 말레(면적 1.77㎢). 대통령궁이 위치한 상업 중심지로 24만명 전체 인구중 7만명이 살고 있다. 12세기 이슬람교가 국교로 채택될 당시에는 「술탄(이슬람교도의 왕)의 섬」이라 불렸던 곳. 때문에 역사 종교 유적지가 모두 이 섬에 있다. 성금요일 이슬람교사원으로 가보자. 몰디브 최대의 사원으로 5천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규모. 해질녘 낙조에 물든 거대한 황금돔의 찬란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뾰족한 탑이 상징물인 금요이슬람교사원도 말레에서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 국가영웅과 왕족들의 묘지다. 전설적인 성자들의 무덤인 「몰리아제」라는 대통령궁과 술탄국립공원 박물관도 관광코스. 이 모든 것이 말레의 부두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걸리는 산책코스에 들어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런 유적보다는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이다. 우리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어서 더더욱 정감있다. 모두들 근방의 섬에서 배를 타고 온 원주민들로 상품이라고 해야 과일과 채소, 땔나무가 전부. 재미있는 것은 사고 파는 게 아니라 모두가 물물교환이라는 것이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몰디브공화국은 지구상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낮은 나라. 주업은 어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이 입하되는 늦은 오후 생선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체가 2m가 넘는 대형상어에서부터 화려하게 채색된 열대돔과 힘좋게 생긴 가다랭이 등 마치 열대수족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몰디브 역사〓불교와 함께 시작했다. 기원전 5세기 불교를 신봉하던 인도와 스리랑카의 드라비다인들이 첫 정착인. 그후 아랍과 교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화하여 12세기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슬람군주국이 되었다.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18세기말 영국 보호령이 됐다가 1965년 독립했다. 68년 군주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바뀌었다. 〈말레〓장환수기자〉 [몰디브 가는길] 몰디브여행은 4박5일 혹은 5박6일 코스가 좋다. 몰디브까지는 싱가포르를 경유한다. 서울∼싱가포르 5시간반, 싱가포르∼몰디브 3시간반 소요. 몰디브공항에 도착하면 터미널 밖으로 나가 리조트별로 운영하는 안내부스를 찾아간다. 그러면 리조트 직원이 보트로 호텔에 데려다 준다. 리셉션센터에서 향기 진한 꽃과 열대과일로 장식한 웰컴드링크 한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몰디브에서의 휴식을 시작한다. 여행중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트랜싯(항공기 갈아타는 과정)하는 동안에는 공항에서 운행하는 무료 투어버스로 싱가포르 구경도 할 수 있다. 공항에 비치된 안내서를 참고한다. ▼안내전화〓싱가포르관광청 02―399―5570 [여행정보] ▼언어〓디베히어 영어(공용어) ▼시차〓4시간. 서울시간〓현지시간+4시간 ▼통화〓1루피아(RF)는 85원 ▼전기〓2백20V ▼입국비자〓불필요 ▼날씨〓몬순기후. 우기(5∼8월)에는 스콜현상 ▼기온〓연중 섭씨 24∼30도 ▼주의사항〓음주는 불법. 입국시 세관원이 술은 유치시킨다. 단 외국인 여행자는 리조트에서만 술을 사서 마실 수 있다. [여행상품] 몰디브는 신혼여행객들이 많이 찾지만 가족동반 여행에도 좋은 곳이다. 리조트호텔도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일체의 경비를 포함한 가격은 4박5일 상품이 1백9만원, 5박6일은 1백19만원. 현지에서 소요되는 추가경비는 1인당 3백달러(미화) 정도면 충분. 2인 이상이면 언제나 출발할 수 있다. ▼예약 및 안내전화〓클럽 아일랜드센터 02―512―5211∼3 [여행 수첩] 여행의 묘미는 역시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 한주전 다녀온 몰디브 취재에서도 여지 없이 두 사람의 친구를 만났다. 첫 친구는 수도 말레에서 만난 히산니사르 리스반(24).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귀찮게 따라붙던 남루한 옷차림의 그를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 관광객들 지갑이나 노리는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부터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팁보다는 나에 대한 호기심에서 접근했던 것이었다. 『남쪽이냐, 북쪽이냐』 이것이 그가 꺼낸 첫 질문. 『아직도 한국이 전쟁중이냐』고 엉뚱한 질문도 했다. 그러면서도 시내 곳곳을 안내하며 상세한 설명도 아끼지 않았다. 『술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분쟁의 원인』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철학. 그러나 이슬람교의 금욕생활은 외부에 비쳐진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곱살 꼬마가 결혼을 하기도 하고 일부다처제가 아직도 덕목처럼 간직돼 있었다. 자그마치 10명이 된다는 몰디브공화국 영부인이 그 한 예다. 다른 한 사람은 쿠룸바빌리지 리조트내 비하마나레스토랑의 매니저. 콧수염을 기른 이 신사는 나의 출국일정까지도 줄줄 외우고 있었다. 당시 이곳 투숙객이 2백명을 넘었는데도. 서울로 떠나기 두시간전 「마지막 식사」를 아쉬워하는 내게 『이번 방문의 마지막 식사일 뿐』이라며 『내년에는 신혼여행으로 다시 오라』고 기분 좋게 둘러치던 그 매니저의 응대는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다. 비영어권에서의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의 본토 영어와 달리 훨씬 듣기 편하다. 또 「콩글리시」도 어느 정도는 통하고. 더 기분 좋았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드컵 코리아」만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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