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은행장들의 「한보 궤변」

  • 입력 1997년 4월 3일 20시 06분


한보특혜대출비리의 일차적인 책임은 거액을 부실대출해 준 일선 은행장들에게 있다. 설사 「대출외압」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의 책임이 줄어들진 않는다. 그런데도 국회 한보사건 국정조사특위에 나온 한보철강 채권은행장들은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지난 2일 출석한 張明善(장명선)외환은행장은 94년 洪仁吉(홍인길·당시 청와대총무수석)의원의 대출청탁사실을 확인하는 질의에 대해 『「한보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정도의 전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의원들이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이 바로 대출을 해주라는 말이 아니냐』고 다그쳤으나 장행장은 끝내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 그대로다』며 「외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홍의원이 외환은행장에게 청탁했고 그후 대출이 이뤄졌다」고 발표했던 사실까지도 부인한 셈이다. 張滿花(장만화)서울은행장은 96년말과 지난 1월초 뒤늦게 한보대출을 확대한 이유에 대해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부도가 날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장행장의 주장은 서울은행이 93년말부터 한보대출규모를 계속 줄여온 점, 그리고 작년말과 연초는 한보의 부도위기가 절정에 달한 시기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말도 안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궤변 늘어놓기」에는 국책은행장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출석한 金時衡(김시형)산업은행총재는 95년 당시 홍수석이 한보대출을 부탁한 데 대해 『그런 부탁이 오든 안오든 그 대출을 하려고 했다. 대출은 실무자의 검토와 규정에 따른 것이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가만히 내버려둬도 대출이 된다면 홍수석이 왜 굳이 부탁을 했겠느냐』고 따졌으나 김총재는 군색한 답변을 계속해댔다. 은행장들의 이같은 「철판을 깔고 나오는」 답변 앞에서 의원들의 추궁은 무력하기만 했다. 은행장들이 진실을 밝히기가 어려운 「현실적인 사정」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고객자산 보호」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은행장들의 변명과 책임회피식 답변을 보고 들으면서 「자율금융」이란 과제가 더욱 요원하게 느껴졌다. 이원재<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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