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劉昌赫(유창혁)9단이 당하다니…』
유9단이 얼마전 국수전 예선에서 입단 3개월짜리 「햇병아리」 기사에게 일격을 당한 소식이 전해지자 바둑계는 깜짝 놀랐다. 유9단을 무너뜨린 기사는 姜至省(강지성)초단.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무명의 15세 소년이다. 유9단은 이 패배이후 보름만에 또다시 睦鎭碩(목진석·17)3단에게 불계로 손을 들고 말았다. 지난해 응창기배 우승과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잇따라 달성,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유9단에겐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올해들어 바둑계에 예상치 못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과거에도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정상급 기사가 신예기사에게 허를 찔리는 경우가 다반사로 빚어지고 있다. 정상급 기사를 위협하고 있는 신예의 얼굴도 다양해졌다.
원인은 무엇일까. 바둑계는 중견기사의 「경계소홀」을 틈탄 신예의 대기습이 개시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국바둑이 이제는 시간과 실력에서 격차가 없어지는 살벌한 승부의 세계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상금랭킹 10위권에 든 상위권 기사중 李昌鎬(이창호) 曺薰鉉(조훈현)9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는 신예에게 2,3차례씩 허를 찔린 경험을 갖고 있다.
상금랭킹 2위인 유9단이 어이없게 패한 것 외에 상금랭킹 4위인 梁宰豪(양재호)9단도 올해들어 입단 3,4년차 신예기사에게 잇따라 2패를 당했다. 安祚永(안조영·18) 白大鉉(백대현·19)3단이 장본인이다.
상금랭킹 5위를 기록했고 올해들어 진로배 9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徐奉洙(서봉수)9단도 예외가 아니다. 진로배에서 한껏 기세를 올리던 지난 1월 중순 그는 金萬樹(김만수·19)2단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이어 3월에는 목진석3단과 혈투를 벌이다 반집을 지고 말았다. 서9단이 올해들어 기록한 네번의 패배중 절반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후배에게 당한 것이었다. 상금랭킹 8위를 기록한 중견기사 徐能旭(서능욱)9단은 더욱 참담하다. 올해들어 기록한 3패가 모두 盧俊煥(노준환·26)4단과 목진석3단 김만수2단 등 「신참」들에게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급 기사중 이창호 조훈현9단만이 신예의 역습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9단은 올해 6차례나 저단진의 도전을 받았으나 동갑내기 崔明勳(최명훈)5단에게 1패를 빼앗긴 것 외에는 모두 승리했다. 조훈현9단은 저단진과 대결할 기회가 한차례 있었으나 무난하게 승리해 저력을 과시했다.
한 프로기사는 『신예들이 넘어야 할 「벽」은 이제 이창호 조훈현9단으로 좁혀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예의 실력이 정상급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으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수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