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는 남한의 3분의 2 크기에 인구 3백60만명에 불과한 조그만 나라다. 그러나 1840년대 중반 이래 계속된 대기근과 이에 따른 이민으로 현재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이리시는 무려 7천만명. 이중 4천5백만명이 미국에 살고 있다. 케네디, 레이건 전미국대통령이 아이리시 출신이고 보면 아이리시가 서구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겠다.
아일랜드는 1921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국가원수는 대통령, 행정수반은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전형적인 내각책임제를 유지해 왔다. 현대통령은 90년 취임한 여성변호사 출신의 메리 로빈슨으로 국민에게 인기가 높아 올해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재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쏟아져나온 언론의 반응은 불행한 대통령만을 보아온 나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난 90년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녀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믿기조차 어려웠다.이제 오는11월그녀가 물러나면 대통령이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수 없을것이다』『어떤 사람이 후임 대통령이 되든 그는 로빈슨이 세워놓은 대통령직이란 어떤 자리여야 한다는 어려운 기준에 맞춰야 할 부담을 안아야 한다』
권위지 아이리시 타임스는 6개면에 걸친 특집을 마련하고 다음과 같은 문구로 사설 말미를 장식했다. 『아일랜드는 그 이상과 꿈을 완성키 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우리는 새롭고 나은 아일랜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메리 로빈슨과 동일한 의미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든, 현재 국민소득이 얼마이든 존경받는 지도자를 가진 국민은 행복하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때 이와 같은 신문 제목이나 보도를 접할 수 있다면 우리 또한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으리라.
안상근(더블린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