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청문회 의원들의 추태

  • 입력 1997년 4월 8일 20시 08분


국민의 큰 기대속에 시작된 한보청문회가 첫날부터 실망만 던져주었다. 청문회를 통해 검찰이 덮어버린 92년 대선자금, 정태수리스트, 金賢哲(김현철)씨 관련사실 등 핵심 의혹들이 파헤쳐지기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특위위원들은 鄭泰守(정태수)피고인의 「자물통 입」을 탓할지 모르겠으나 시민들의 눈에는 특위위원들의 준비부족과 서투른 추궁이 더 큰 문제다. 당초부터 정씨가 순순히 입을 열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면 소문난 「자물통 입」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그런 준비도 없이 특위위원들은 그저 여러가지 설을 늘어놓으며 혼자 흥분해 목소리만 높였고 이 틈을 타 정씨는 특유의 「버티기」와 「잡아떼기」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이런 가운데 정씨의 입을 통해 신한국당 金德龍(김덕룡)의원, 국민회의 金相賢(김상현)지도위의장, 자민련 金龍煥(김용환)사무총장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을 간접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오후가 되자 특위위원들은 신한국당 김의원 등에게 돈을 준 사실을 간접확인한 정씨의 발언을 뒤집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특위위원들이 자꾸 이 문제를 되묻자 눈치를 챈 정씨가 오전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너무나 속이 빤히 보이는 짓들이었다. 청문회가 끝날 즈음 일부 위원들은 잘못된 수치를 들이밀며 서투른 신문을 했다가 오히려 정씨로부터 역추궁을 받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TV를 꺼버릴 만도 했다. 8일 속개된 청문회에서도 특위위원들은 서로의 인신공격성 발언을 문제삼아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장에서 벌어진 한심한 짓들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이런 소동이 있은 뒤 신문에 나선 특위위원들이 서로 『존경하는 의원이…』식의 발언을 해대는 일이었다. 역겨운 일이었다. 특위위원들은 특위 전체의 신뢰성이 의심받고 국회의 국정조사 무용론(無用論)까지 대두되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최영훈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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