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닉슨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사건 청문회는 73년에 시작해 해를 바꾸며 9개월 이상이나 열렸다. 레이건대통령을 곤궁에 몰아넣었던 이란 콘트라사건 청문회는 86년부터 무려 15개월이나 계속됐다. 클린턴대통령의 주지사 시절 비리를 다룬 화이트워터 청문회는 94년 약 5개월간 끌었다. 이처럼 미국의 청문회는 대장정이다
▼미국의회 의원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이같은 대장정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 물론 진실을 은폐하려는 측도 있고 교묘한 정치적 계산으로 청문회를 이용하려는 측도 있다. 그러나 완벽한 사전조사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여야가 따로 없다. 미국 청문회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진실규명을 위해 수개월동안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의원들의 소명의식과 청문회오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여론의 힘이다
▼한보청문회가 시작된지 겨우 5일이 지났다. 그런데 몇몇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이 『더이상 못하겠다』며 사퇴서를 냈다. 청문회가 「민주계 죽이기」에 이용되고 있다느니,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했을 청문회라느니 구실도 가지가지다. 청문회의 제도적 한계에 대한 회의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유가 말이 안된다. 처음부터 무슨 생각으로 특위 위원직을 맡았는지 모르겠다. 한보특위가 파당싸움이나 하고 마음에 안들면 멋대로 뛰쳐나가도 괜찮은 기구는 아니지 않은가
▼어느 계파를 죽이는데 청문회가 이용되고 있다면 그 청문회는 엄청난 「사기극」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끝까지 특위에 남아 책임지고 그 허위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청문회의 제도적 한계때문이라면 그 한계를 없애고 고칠 사람은 누구인가. 공인(公人)으로서 자신의 임무조차 망각한 채 여론의 질타를 피해 몸보신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