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역사」를 추적해 같은 이름의 책을 펴낸 미국인 존 누난박사는 뇌물이 마술(魔術)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했다. 마술의 희생자나 뇌물을 받은 사람은 정신적 변화의 포로가 된다는 점이 우선 같다. 마술이나 뇌물은 안되는 일을 되게 하고 자신의 행위를 철저히 감추는 점도 같다. 때문에 옛날엔 뇌물죄나 마술죄가 똑같이 신(神)의 이름으로 처벌됐다는 것이다 ▼뇌물을 거절한 사람들이 즐겨 쓴 말은 『돈이 싫어서가 아니라 마음속의 악귀(惡鬼)가 살아날까 두려워…』였다. 동양에서는 몰래 뇌물을 주려해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라는 말로 거절한 현인도 있었다. 일단 받고나면 마술에 걸린 듯 의지가 무력해져 결국은 신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까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鄭泰守(정태수) 리스트가 터져 나온 후 정치권이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듯 요동치고 있다. 돈 준 사람이 그렇다고 진술한 모양인데 안받았다고 잡아떼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리스트엔 33명뿐이라고 검찰이 밝혔지만 자고 나면 숫자가 늘어나고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이 신문지면에 보태진다. 전달자가 중간에 가로챘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정치적 음모설도 무성하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한없이 헷갈리다 못해 마술의 세계를 보는 것도 같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검찰의 책임이 크다. 애초 리스트가 나왔을 때 이름을 모두 밝히고 뇌물인지 적법한 정치자금이었는지를 가려 주었어야 했다. 쉬쉬하다 보니 세간에선 무조건 뇌물로 간주했고 당사자들은 나중에야 어찌되든 우선 부인부터 하는 모양이 됐다. 검찰이 정말 옥석(玉石)을 가려 『이것이 진상이다』하고 밝힌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같다. 사회전체를 온통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 이 의혹의 안개를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