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동포돕기」와 딜레마

  • 입력 1997년 4월 13일 19시 58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동포를 돕자는 운동이 종교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12일 저녁에는 각계 지도층인사 6백여명이 옥수수죽을 들며 북한동포들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북한동포를 돕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민족운동」이라며 북한동포돕기 옥수수보내기운동에 전국민이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 당국조차 드러내놓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만큼 심각하다. 최근 외국언론들이 잇달아 전하는 북녘 동포들의 기아실태는 북의 식량난이 거의 한계상황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4개월 안에 10만명의 주민들이 아사할 것이라고도 하고 2백60만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색깔이 노랗게 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눈물겨운 소식에 접한 남녘 동포들이 체제나 이념을 떠나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살리자고 팔 걷고 나선 것은 꼭 민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인간적 선의(善意)의 발로일 것이다.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고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착한 성질이다. 더구나 배고픔에 시드는 어린 아이들에게 옥수수죽 한 그릇이라도 보내자는 호소에 무슨 정치적 저의가 있을리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동포 돕기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감동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도주의적 선의가 배반당한 경험을 우리는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다. 북한 주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일차적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도 주민들의 굶주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15일의 金日成(김일성) 생일잔치를 위해 세계 40여개국에서 3천여명의 예술인들을 불러들이고 북한을 방문한 미국 상원의원 일행에게 11가지 코스의 호화만찬을 대접하며 흥청거리고 있다. 또 동해안에는 노동1호 미사일을 재배치해 발사실험을 강행하려 한다는 보도도 있다. 이렇게 보면 코언 미국방장관 등이 북한에 대한 국제 식량원조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청한 것은 그냥 흘려버리기 어렵다. 북한의 식량구걸이 평화를 위한 것인지, 추가식량 확보를 위한 것인지 분간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북한 동포를 돕는 행위가 북한의 전시체제를 돕는 행위가 된다면 그것은 식량돕기운동에 앞장선 사람들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원조를 막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식량이 북한주민에게 확실히 도달할 수 있는 투명한 통로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우리 정부로서도 북한의 붕괴 또는 도발까지를 대비하면서 확고한 원칙 위에서 식량원조에 유연성을 보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결국 평양정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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