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관한 세권의 책이 전혀 다른 일본을 밝혀내고 있다.
한권은 일본의 저잣거리 풍경에서 「혼」을 건져 올리겠다는 식이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김주환 한은경옮김·민음사)이 그런 책이다.
프랑스의 석학이요 비평가인 저자는 일본 여행을 통해 이 학술서도 기행문도 아닌 이 일본문화비평서를 썼다. 주어가 생략된 일본 문장에서, 오직 17음 안에 온갖 감흥을 토막쳐 담아내는 「하이쿠」(단형시)에서, 배우의 텅 빈 얼굴에서, 구멍뚫리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덴푸라」에서, 너무 공손한 인사에서 동양적인 「비어 있음」(無)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비어있음의 충일함, 가벼움의 두께를 보여주듯 바르트는 일본문화론을 촘촘히 옭아내고 있다. 생선회(스시) 일본씨름(스모) 빠찡꼬를 지켜보면서 그런 것들을 기호삼아 일본이야기를 적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번역자도 지적하듯 바르트는 일본 대중문화나 미디어 영화 등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없는게 흠으로 보인다. 일본 스모에 대한 레토릭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스모는 한순간에 상대편 몸뚱이를 넘어뜨리는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다. 위기나 드라마 또는 피로따위가 없다. 스포츠도 아니다. 무게를 대는 기호일뿐, 결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격투기가 아니다」. 과연 이 극단의 수사(修辭)에 일본인인들 고개를 끄덕일까. 「기호의 제국」과는 전혀 다른 데를 바라본 책이 바로 「비상구 없는 일본의 에로스」(김지룡저·시사플러스)이다. 일본의 더럽고 추한 「항문」을 들여다보며 소돔과 고모라판같은 말세적 섹스문화를 경고한다.
여자 중고교생들의 체액이 밴 속옷을 파는 브르세라 숍의 실태, 그 변태적인 영업을 경쟁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소개하면서 여고생 팬티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입으로 빠는 장면까지 내보내는 미디어의 책임까지를 짚고 있다. 여고생아닌 여중생 매춘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와 증언을 취재해 적고 있다.
88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일본 게이오대(慶應大)박사과정에 있는 저자는 삐삐와 휴대전화 PC통신을 이용한 여중고생의 매음, 심지어 교내 매춘, 난교파티의 확산을 소개한다. 천박한 상술이 성풍속 산업을 타락의 극치로 몰아갔다고 탄식하면서 한국에도 유사한 병이 옮고 있다고 외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란을 소재로 한 비판서가 너무 방대하고 실증적인 자료를 담아 일본판 음란 백과사전이 되버린 듯한 게 흠이다.
일본의 「항문」도, 비어있음의 「혼」도 아닌 일본 「몸통」을 보여주는 책도 나왔다. 「일본 근대대표시선」 「일본 현대대표시선」(유정 옮김·창작과비평사)이 거기에 해당한다.
올해 67세인 역자는 일본대 예술학부에 다니고 일본 문예지에 시가 당선되기도 한 세대.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같은 유명한 시인 80여명의 작품을 정선해 두권으로 묶었다.
본격적인 일본시 소개가 전혀 없었던 만큼 한글세대에게, 그리고 서양 번역시에만 익숙한 독자에게 의미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특히 우리 현대시가 일본시의 자극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일본시의 정통적인 흐름은 문학사 공부에도 도움을 줄터이다. 프랑스인 롤랑 바르트와 64년생 김지룡씨가 읽고 보지 못한 일본의 수수한 서정을 유정씨가 「일본의 깃털아닌 몸통」이라는 식으로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