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이양희/호화빌딩서 굶주림 체험 씁쓸

  • 입력 1997년 4월 18일 07시 42분


동아일보 13일자에 실린 종교지도자들의 모임 기사를 보았다. 식량난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강냉이 죽을 먹었다니 참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북한 공산집단이 전쟁 모험주의자들이요 동족 살육의 원흉이라 해도 세계에서 고립되어 가는 그들의 참담하고 처참한 현실을 같은 민족인 우리가 어찌 외면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기사를 보고 뒷맛이 개운하지 못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한 뜻이라면 왜 하필 그 비싼 임대료를 물어가면서 호화스런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모였을까. 진실로 굶주림을 느껴보고자 했다면 허허벌판에 텐트를 치고 행사를 하거나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식음을 끊고 수행자들의 흉내라도 내볼 일이다. 일류호텔에서 고급 식기에 한끼 죽을 먹어본다고 해서 누가 공감을 할 것인가. 그 임대료를 아꼈더라면 더 많은 식량을 구입해서 북한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굶주림의 고통에 동참한다면서 호화스런 호텔 회의장에서 강냉이죽을 먹고있는 이 땅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형식과 위선에 가득찬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씁쓸했다. 제발 종교계만이라도 전시적이고 위선적인 속물 근성을 버렸으면 한다. 이양희 (서울 노원구 공릉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